제7장: 파도의 경고
해안가로 향하는 길목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는 마치 거대한 장막처럼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진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섞인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최무결의 서늘한 명령을 곱씹었다. 기술을 국유화하여 통제하겠다는 그 선언은, 결국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옭아매는 거대한 감옥이 될 것임을 의미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면을 울리는 증기 선로의 진동이 마치 거대한 짐승의 신음처럼 느껴졌다.
해안가 근처의 관측소에 도착했을 때, 공기는 이미 비정상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안을 지키는 수비병들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훨씬 분주했고, 그들의 눈에는 정체 모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이진은 관측소 높은 망루 위로 올라가 수평선을 응시했다. 안개 너머, 저 멀리 바다의 끝자락이 기묘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저것이 정말 배란 말입니까?"
옆에 서 있던 젊은 관측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진은 망원경을 들어 시선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실체는 조선의 증기 함선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것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조선의 증기선들과는 달랐다. 서구의 함선들은 검은 연기 대신, 선체 하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그 빛은 한설이 보여주었던 푸른 결정체의 빛깔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빛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바다가 푸른 불꽃에 휩싸인 듯 일렁였고, 배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아니 마치 허공을 가르듯 비현실적인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저 속도는... 증기 기관의 출력으로는 불가능해."
이진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읊조렸다.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함선의 움직임은 유려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돛도, 육중한 연돌도 없었으나, 그들은 파도의 저항을 무시한 채 수평선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동력이 아닌, 앞서 목격했던 그 푸려 빛—연금술의 힘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추진력이었다.
✦ ✦ ✦
"이진! 정신 차리게! 지금 저것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가!"
뒤이어 나타난 해안 수비대장의 고함에 이진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수비대장은 다급히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조선의 증기 함대에게 비상 출동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조선의 주력 함선들이 거대한 증기를 내뿜으며 연기를 토해내며 출항하고 있었으나, 이진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거북이가 날렵한 상어를 쫓는 것처럼 위태롭고 느리게만 보였다.
"저들의 속도를 보십시오. 우리 함대가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이진의 물음에 수비대장은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진은 다시 한번 망원경을 들었다. 서구의 함선은 이제 안개를 뚫고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선체 곳곳에는 푸른 빛을 머금은 결정체들이 박혀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규칙적으로 박동하며 주변의 바닷물을 푸른 안개로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었다. 기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뒤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파도의 전조였다. 조선이 정교한 톱니바퀴와 뜨거운 증기의 힘을 믿고 있을 때, 저 너머의 세력은 이미 자연의 법칙을 비웃는 이질적인 에너지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진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기계적 정밀함이, 저 푸른 빛의 폭풍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것인가. 만약 저 빛이 가진 에너지가 결정체 내부의 혈관처럼 요동치며 함선을 움직인다면, 그 힘은 조선의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저 빛은... 스스로를 태우며 나아가는 빛이 아닙니다. 주변의 에너지를 집어삼키며 길을 만드는 빛입니다."
이진의 말은 혼잣말이었으나, 그 의미는 명확했다. 푸른 결정체가 내뿜는 에너지는 단순한 동력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질서를 재편하는 파괴적인 힘이었다. 그 힘이 해안선에 닿는 순간, 조선이 쌓아 올린 철의 제국은 그 거대한 파도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지도 몰랐다.
멀리서 조선의 증기 함선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진의 눈에는 그 포성이 마치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을 향해 던지는 가냘픈 비명처럼 보였다. 푸른 빛을 머금은 서구의 함선은 이제 안개를 완전히 찢고,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조선의 해안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으나, 바다 위를 가르는 푸른 빛은 그 어둠을 찢어발기며 기괴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문명의 충돌이자, 다가올 파멸의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