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권력의 설계자
새벽의 푸르스름한 공기가 작업실의 창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이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놓인 태엽 심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금속의 결을 따라 번져가던 그 기괴한 균열은 아침의 빛 아래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마모가 아니라, 마치 기계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며 내지르는 소리 없는 비명 같았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육중한 말발굽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이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문을 열었다. 차가운 새벽 안개 사이로, 최무결의 사가(私家)에서 보낸 호위병들이 길을 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기술을 다루는 학자의 경외심 대신, 명령을 수행하는 집행자의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강철 괴수는 이미 증기를 내뿜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이진의 얼굴을 뜨겁게 달구었다. 최무결은 병기의 중심부에 서서, 마치 신의 피조물을 관찰하는 창조주처럼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왔느냐.”
최무결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연무장 전체를 울릴 만큼 단호했다. 그는 이진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손에 든 설계도를 천천히 접었다.
“이것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다. 제국의 질서를 수호할 강철의 의지이지. 그런데 네 놈의 눈에는 왜 이토록 망설임이 가득한 것이냐.”
이진은 고개를 숙였으나, 눈빛만큼은 피하지 않았다.
“대감, 저는 이 병기의 심장을 보았습니다. 금속의 결정이 스스로를 찢고 있습니다. 이대로 강한 압력을 가한다면, 이 괴수는 제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파괴할 것입니다. 기술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힘을 다스리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이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기술자로서의 양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최무결은 코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이진의 발밑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다스린다고? 다스리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너는 아직도 작은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매몰되어 있구나. 네가 걱정하는 그 미세한 균열은, 내가 부여한 통제의 힘으로 억누를 수 있다. 문제는 그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 하는 것이다.”
최무결은 이진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가장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 들었다.
“오늘부로 조정은 ‘기술 국유화령’을 공포할 것이다. 모든 공학적 지식과 설계도, 그리고 핵심 부품의 제조 공정은 국가의 허가 없이는 공유될 수 없다. 네가 가진 그 천재성 또한 이제 개인의 것이 아닌, 제국의 자산이다.”
이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기술의 감옥을 만드는 선언이었다.
“국유화라니요... 그것은 기술을 소수의 권력자만이 독점하게 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기술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제국은 성장이 아닌 정체를 맞이할 것입니다. 지식은 흐를 때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흐르는 물은 고이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최무결의 고함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그는 이진의 턱을 움켜쥐듯 다가와 속삭였다.
“네가 말하는 그 자유로운 기술이, 저 바다 너머의 침략자들에게 넘어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통제되지 않는 힘은 재앙일 뿐이다. 너는 그저 우리가 만든 이 거대한 질서 안에서, 정해진 톱니바퀴의 역할만을 수행하면 된다.”
이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최무결의 눈 속에서 본 것은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려는 거대한 탐욕이었다. 어제 보았던, 최무결의 측근이 은밀히 건네던 그 서신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마도 기술을 국유화하고, 그 힘을 무기로 전환하기 위한 은밀한 움직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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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결의 압박을 뒤로하고 연무장을 빠져나온 이진의 발걸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최무결이 말한 '통제'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그것은 질서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대한 사슬이었다.
그때, 길가에 서 있던 낡은 서점의 주인, 노인이 이진에게 다가와 눈짓을 보냈다. 이진은 익숙한 몸짓으로 그를 이끌어 골목 안쪽의 작은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제국의 화려한 증기 소음이 닿지 않는, 낡은 목조 건물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이진 공, 소문이 파다하더군. 조정에서 모든 기술을 거두어들이려 한다는 소문이.”
찻집 주인은 낮게 읊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는 단순한 서점 주인이 아니라, 제국의 화려함 뒤편에서 움직이는 소규모 지식인들의 은밀한 연결고리였다.
“국유화라니, 이는 기술을 가진 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처사입니다. 대감께서는 기술을 통제의 수단으로만 보고 계십니다.”
이진의 말에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우리는 이미 움직이고 있네. 자네처럼 기술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권력의 벽은 높아지겠지만... 기록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기술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도록, 지식을 흩뿌릴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있네. 자네가 말한 '흐르는 기술'을 꿈꾸는 자들이지.”
이진은 노인이 건넨 종이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것은 국유화에 반대하며, 기술의 공유를 주장하는 은밀한 결사의 움직임을 암시하는 문구들이었다. 권력의 벽이 높아질수록, 그 벽 밑에서 꿈틀거리는 저항의 움직임 또한 거세지고 있었다.
“자네가 만든 그 태엽이, 언젠가 이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릴 작은 틈이 되길 바라네.”
노인의 말은 이진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제 단순히 기계를 만드는 공학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기술이 권력의 전유물이 될 것인지, 아니면 모두를 위한 해방의 도구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대의 목격자가 되어 있었다.
찻집을 나와 다시 길을 나선 이진의 눈에, 멀리 보이는 해안가가 들어왔다. 안개가 자욱한 그 바다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다시금 그를 엄습했다. 그것은 최무결이 만든 강철의 괴수일 수도, 혹은 한설이 경고했던 저 푸른 빛의 침입자일 수도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고, 지면을 울리는 증기 기관의 박동은 이전보다 더욱 거칠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톱니바퀴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으나, 이제 그 움직임은 파멸을 향한 가속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향한 진통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