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붉은 연기
저택을 빠져나온 이진의 발걸음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듯 위태로웠다. 카이로스가 남긴 푸른 빛의 잔상과 그 서늘한 경고가 망막에 눌러붙어 지워지지 않았다. 한설은 말없이 그의 곁을 지키며 인파가 적은 뒷길로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진의 시선은 자꾸만 발밑의 진흙과 하늘을 뒤덮은 잿빛 구름 사이를 헤맸다. 제국의 화려한 기술력이 선포된 순간, 그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처참하게 신음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목격해야 했다.
한양의 외곽, 거대한 공장 지대를 가로지르는 물길은 이미 강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산업의 배설물이 흐르는 검은 혈관이었다. 공장의 굴뚝들이 쉼 없이 내뱉는 검은 연기는 하늘의 태양을 가린 채 대기를 짓눌렀고,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은 기름진 거품과 정체 모를 찌꺼기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진은 한설을 따라 강가 근처의 작은 다리 위에 멈춰 섰다.
“보게, 이진. 저게 우리가 말하는 제국의 영광이야.”
한설이 가리킨 곳에는 오염된 물 위로 붉은빛을 띠는 부유물들이 뒤엉켜 떠다니고 있었다. 강물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죽어가는 짐승의 피처럼 걸쭉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폐수와 각종 금속 찌꺼기가 뒤섞인 물줄기는 강변의 풀들을 검게 태워버렸고, 그 끝에는 생명력을 잃은 물고기들이 배를 하얗게 드러낸 채 떠올라 있었다.
이진은 차마 그 광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방금 전 카이로스에게서 보았던, 그 찬란하고도 파괴적인 푸른 빛을 떠올렸다. 그 빛이 가져올 파멸이 물리적인 파괴라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서서히 질식시키는 소리 없는 학살이었다.
“이것은... 숨을 쉴 수 없는 풍경이군요.”
이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강물 근처로 다가가 손을 뻗으려다, 그 검은 액체가 손에 닿는 순간 느껴질 불쾌한 감촉을 상상하며 손을 거두었다. 기술의 진보는 정교한 톱니바퀴와 거대한 증기 기관을 가져다주었으나, 그 대가로 대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구름을 짓누르고, 그 구름은 다시 산성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며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이 연기가 제국의 번영을 알리는 신호라고. 하지만 저 강가에서 채집을 하던 아이들의 눈에 서린 두려움을 보았는가? 저 검은 물을 마시고 병들어가는 이들의 신음은 연기 속에 묻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지.”
한설의 냉소적인 말은 이진의 가슴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혔다. 그녀는 상단을 운영하며 이 오염된 물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계와 건강을 갉아먹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강물의 흐름이 아닌, 그 너머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가는 민초들의 삶을 향해 있었다.
이진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소음, 그 소음 뒤에 숨겨진 가쁜 숨소리들이. 공장의 거대한 증기 압력이 높아질수록, 대지는 그만큼 더 깊은 균열을 내며 신음하고 있었다. 자신이 연구해온 정밀한 기계 장치들이, 실은 이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기술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통제할 수 없는 파괴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태엽을 깎고, 심장을 조율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만들어낸 세상은 이토록 탁하고 무거웠다. 붉은 연기가 자욱한 하늘 아래, 강물은 검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억눌린 대지의 분노가, 이 검은 강물과 자욱한 연기 속에 응축되어 가고 있었다.
강가 근처, 공장에서 나온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그을린 연기로 검게 뒤덮여 있었고, 눈동자에는 생기 대신 깊은 피로와 형언할 수 없는 울분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서로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그 말들이 바람을 타고 이진의 귓가에 스칠 때마다, 그것은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이진, 저들의 눈을 보게. 저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야. 언젠가 이 검은 물이 터져 나올 때, 저들이 무엇을 향해 달려갈지 자네는 상상조차 못 하겠지.”
한설의 말은 이진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산업화의 화려한 불빛이 꺼진 뒤 찾아올 것은, 이 오염된 강물처럼 검고 진득한 민중의 분노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진은 다시 한번 강물을 바라보았다. 검은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 구멍 속으로 제국이 쌓아 올린 모든 가치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붉은 연기가 자욱한 하늘 아래, 제국의 심장부는 서서히 숨을 멈춰가고 있었다.
그때, 멀리 공장 지대 한쪽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기둥처럼 솟구쳤다.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지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진은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적 사고가 아닌, 무언가 거대한 질서가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