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푸른 빛의 침입
이진은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을 빠져나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느껴지는 최무결의 서늘한 명령이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가 말한 '강철 괴수'의 심장을 만드는 일은, 결국 자신이 평생 지켜온 공학적 신념을 파괴의 도구로 바꾸는 일이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킨 톱니바퀴처럼 어지러웠으나, 발걸음은 자석에 이끌리듯 한설의 상단이 위치한 해안가 근처의 거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해안가는 한양의 번잡한 증기 소음과는 다른, 거칠고 축축한 파도 소리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밤바다는 검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품고 있었고, 그 위로 부서지는 파도는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이 수면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진은 안개가 자욱한 해안가 마을의 작은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상단의 물류가 드나드는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오늘 밤은 유독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늦었군, 이진. 자네의 그 고뇌하는 표정은 밤이 깊을수록 더 짙어지는 모양이야.”
안개 속에서 한설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녀는 등불 하나에 의지한 채 부두 끝에 서 있었다. 이진이 다가서자, 그녀는 들고 있던 천을 내렸다. 그 안에는 며칠 전 보여주었던 그 푸른 결정체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결정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불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을 보게. 아까 낮에 해안가 마을에서 들어온 소문이야. 어부가 잡아 올린 것은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었어.”
한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파도가 거세게 치는 암초 지대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안개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났다.
“해안가 근처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구의 소형 선박 조각이 발견됐는데, 그 파편들 사이에서 이 푸른 빛을 내뿜는 작은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 사람들은 그것을 바다의 저주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한설은 이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자연의 산물이 아니야. 정교하게 가공된, 인위적인 에너지의 결정체지. 우리가 증기를 다스리듯, 그들은 이 푸른 빛을 다스리고 있어. 이건 연금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동력원이야. 우리 제국이 거대한 증기 기관의 힘에 매달려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차원을 달리하는 힘을 손에 넣은 모양이야.”
이진은 한설이 내민 결정체 근처로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닿기도 전에,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냉기가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차가움이 아니었다. 마치 존재 자체가 주변의 온기를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듯한, 생명력이 거세된 허무의 냉기였다.
“이 빛은...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속에는 폭풍 같은 힘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이 나직이 읊조렸다. 그는 공학자로서 직감하고 있었다. 이 푸른 결정체는 그가 알고 있는 열역학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었다. 증기는 열을 가해 팽창시키고 그 압력으로 움직이지만, 이 결정체는 스스로를 얼리면서도 주변에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다. 만약 이 힘이 기계 장치와 결합한다면, 기존의 증기 기관은 한낱 장난감처럼 전락할지도 몰랐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연금술'의 실체일지도 몰라. 이진, 우리가 만든 강철의 성벽이 저 작은 빛 하나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서구의 세력이 단순히 무역을 위해 오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들은 이 푸른 힘을 앞세워 우리의 해상권을 잠식하려 하고 있어.”
한설의 목소리에 서린 긴장감이 이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제국이 자랑하는 증기 함대는 다가올 파도 앞에서 무기력한 고철 덩어리에 불다.
이진은 다시금 결정체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빛은 안개 속에서 기묘하게 일렁이며,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이 빛이 가진 에너지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만약 이 힘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쓰인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할 것이다.
“이 결정체의 에너지는 규칙적이지 않아. 마치... 무언가 거대한 의지에 따라 요동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진의 말에 한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의지라니, 자네답지 않게 너무 문학적이군. 하지만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 빛이 나타난 순간부터, 우리가 쌓아 올린 질서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어.”
두 사람의 대화 위로,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괴수가 해안을 향해 밀려오는 발소리 같기도 했고, 무너져 내리는 제국을 향한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진은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자신이 만들어야 할 '강철의 심장'과 눈앞의 '푸른 빛'이 충돌할 미래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결정체가 갑작스럽게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이진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처럼, 푸른 빛은 날카로운 파동을 일으키며 주변의 안개를 찢어발겼다. 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거두었다. 그 찰나의 섬광 속에서, 그는 보았다. 결정체 내부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마치 살아있는 혈관과도 같은 빛의 줄기들을.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마치 스스로 자라나는 생명체처럼 보였다.
이질적인 힘의 태동이었다. 제국이 마주할 거대한 격변의 서막이, 바로 이 작은 푸른 빛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