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폭풍 전야
태오는 빗줄기를 뚫고 카페를 향해 달렸다. 발밑의 진흙이 신발을 집어삼킬 듯 무거웠지만,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이제 도망자가 아닌, 사냥을 설계하는 포식자의 사고로 회귀했다. 장부를 미끼로 던지고, 적이 가장 믿고 있는 구역으로 유인하는 것. 그가 가야 할 길은 명확했다. 박 실장의 눈앞에 나타나 장부를 넘겨주는 척하며, 그가 가진 권력의 목줄을 단숨에 죄는 것. 하지만 그 설계도에는 단 하나의 치명적인 변수가 있었다. 바로 수아였다.
그녀가 이 피비린내 나는 판의 중심에 서게 둘 수는 없었다. 태오는 카페의 뒷문 근방, 안개로 가려진 골목길로 몸을 숨기며 숨을 골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그는 품 안의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종이 뭉치가 불꽃이 되어 도시를 태울지, 아니면 자신을 태워 재로 만들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만은 그 불길 밖으로 밀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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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공기는 비릿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아는 카운터 아래로 손을 숨긴 채, 눈앞의 사내들을 응시했다. 그들의 옷에서 풍기는 젖은 가죽 냄새와 담배 찌든 내는 이 공간의 평온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사내 중 한 명이 카운터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가락 끝에 묻은 빗물이 나무 상판을 적시며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
“말해. 그 물건, 어디로 갔는지.”
사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압박감은 거대했다. 수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공포가 발끝에서부터 차오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태오가 남긴 그 위태로운 무게를 그녀는 이미 읽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쥐었는지, 그가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는지. 그녀는 그가 스스로를 파괴하며 가려는 길의 끝이 얼마나 참혹할지 예감하고 있었다.
“...모르는 일이에요. 저는 그저 손님을 기다릴 뿐입니다.”
수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단호했다. 그녀는 태오가 말했던 ‘깊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그림자가 지금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태오를 피신시켜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가 홀로 이 지옥의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에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거짓말은 그만두지. 그 남자가 여기 머물렀다는 건, 이 안개 속에서도 흔적이 남는다는 뜻이니까.”
그때였다. 카페의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사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빗줄기를 뚫고 나타난 것은, 젖은 작업복을 입은 채 눈빛이 번뜩이는 태오였다. 그는 마치 안개 속에서 솟아오른 유령처럼, 그들의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 여자한테는 아무것도 묻지 마.”
태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짐ร의 살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수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내들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사내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은 태오의 옷차림과 체구에서 그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이건 경찰의 일이다, 이 자식아.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경찰? 이 도시에서 경찰이 누군지 잊은 모양인데, 그건 네가 아는 그런 게 아닐 거다.”
태오는 가방을 고쳐 쥐며 차갑게 응수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아를 뒷문으로 빠져나가게 한 뒤, 자신을 미끼로 던져 그들의 시선을 돌릴 계획이 완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아의 눈에서 읽은 기묘한 결연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오가 자신을 보호하려 할수록, 그녀의 눈빛은 더 깊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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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오는 수아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뒤로 밀어냈다.
“지금 당장 뒷문으로 나가!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그것은 명령이자, 처절한 애원이었다. 그는 그녀를 이 피의 소용돌이에서 강제로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수아는 태오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태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태오 씨, 당신이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태오에게는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수아는 태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장부를 미끼로 박 실장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끝이 자신을 향한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비켜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판이 아니라고 했다.”
사내 중 한 명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태오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자신의 몸이 방패가 되어 수아를 가리는 동시에, 적들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마쳤다.
“가요! 어서!”
태오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의 눈은 이제 수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위협하는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있었다. 수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뒷문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움직임은 태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고 목적이 분명했다. 그녀는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태오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경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태오는 그녀의 뒷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쏠린 시선들을 마주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과, 눈앞의 사내들뿐이었다.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해볼까.”
태오가 가방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낮게 읊조렸다. 가죽 가방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카페의 정적을 깼다. 그는 이제 장부를 던져줄 준비가 되었다. 이 위험한 도박의 첫 번째 단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수아가 남긴 그 결연한 눈빛이, 자신이 설계한 완벽한 경로를 어떻게 뒤흔들게 될지를.
안개는 더욱 짙어져 이제는 카페의 불빛조차 희미한 잔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태오는 숨을 죽인 채, 다가오는 어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