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깨진 거울
낡은 컨테이너의 철문이 바람에 흔들리며 끼익, 비명을 질렀다. 태오는 눅눅한 습기가 배어 나오는 구석진 자리에 몸을 웅크린 채, 품 안의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죽의 질감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이곳은 세상으로부터 지워진 자들이 모이는 쓰레기장 같았으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그에게는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안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일정한 간격, 망설임 없는 무게감. 그것은 도망자의 발걸음이 아니라, 사냥감을 향해 유유히 다가오는 포식자의 보폭이었다. 태오는 본능적으로 품 안의 라이터를 움켜쥐었다. 금속의 차가운 감각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을 잠재우려 애썼다.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안개가 문틈을 타고 밀려들어 오며, 그림자 하나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안개가 너를 지켜줄 것 같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인물은 낡은 트렌치코트를 걸친 사내였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최 형사였다. 그는 경찰 조사계의 형사라기보다는, 이 도시의 부패한 공기에 길들여진 부랑자처럼 보였다.
“최 형사...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태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최 형사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꽃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짧은 순간,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는 연기를 깊게 내뱉으며 태오의 발치에 놓인 가방을 훑었다.
“네가 뭘 주웠는지, 그게 얼마나 무거운 건지... 너 같은 놈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최 형사의 말투에는 정의감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귀찮은 사건을 처리하려는 공무원의 무기력함과, 거대한 흐에는 대항하지 못하는 자의 냉소만이 가득했다. 태오는 그가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가늠하려 애썼다.
“그냥 돌려주면 끝날 일이야. 난 그저... 동생의 흔적을 찾고 있었을 뿐이라고.”
“동생? 그 죽은 애 말인가?”
최 형사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던져 짓이기며 태오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애가 왜 죽었는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가? 아니면 알고 싶은 걸 숨기고 있는 건가? 태오야, 이 도시는 거울과 같다.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비춰주지. 네가 보고 있는 그 장부라는 것도, 결국은 누군가가 던져준 미끼일 뿐이야.”
태오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최 형사의 눈은 이미 장부의 실체보다는, 그 장부가 불러올 파장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장부, 해신이 찾고 있어. 박 실장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고. 너 같은 놈이 그걸 들고 있으면, 네가 가려던 안개 속은 지옥이 될 거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경찰에 넘기려는 건가, 아니면 그들에게 넘기려는 건가?”
태오의 날 선 질문에 최 형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허탈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경찰? 이 도시에서 경찰이 누군지 잊었나 보군. 우리는 그저 파도가 치면 다시 돌아올 모래알 같은 존재들이다. 거대한 흐름을 막으려 들지 마라.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야.”
최 형사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는 척하더니, 다시 태오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기묘한 이중성이 서려 있었다. 마치 태오를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사지로 밀어넣고 싶어 하는 잔인한 관찰자의 시선이었다.
“가방을 내놔라. 그러면 내가 네 흔적을 지워줄 수도 있어. 조용히 사라질 수 있게 말이야.”
“그게 당신이 말하는 정의인가?”
태오가 냉소하며 물었다. 최 형사는 대답 대신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의? 그런 건 이 안개 속에선 보이지 않아. 보이는 건 오직 살아남는 것뿐이지.”
태오는 깨달았다. 최 형사는 경찰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실상은 이 도시의 부패한 질서를 유지하는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가 말하는 ‘흔적을 지워준다’는 말은, 태오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회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매장하겠다는 은밀한 협박이었다.
그는 믿고 싶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법과 질서가 숨 쉬어야 할 곳에, 오직 생존을 위한 타협과 침묵만이 가득했다. 최 형사의 눈빛은 이미 박 실장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이 도시의 모든 숨구멍이 막혀 있었다.
“...당신은 정말 구역질 나는 사람이군.”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최 형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구역질이라도 나야 살아있는 거지. 안 그런가?”
최 형사는 태오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안개를 헤치며 다시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이 도시의 부패를 상징하는 거대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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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사가 떠난 뒤, 태오는 홀로 남겨진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바닥에 닿는 라이터의 감촉이 아까보다 훨씬 차갑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온기가, 최 형사의 냉소적인 말 한마디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가방 속의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이 종이 뭉치가 세상에 드러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제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정의를 구현할 도구가 아니라, 이 도시의 거대한 괴물을 깨우는 종소리가 될 것이었다.
태오는 문득 수아를 떠올렸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던 그녀의 손길,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의미심장한 경고들. 그녀는 이 지옥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녀 역시 이 차가운 침묵의 일부였던 걸까.
안개는 더욱 짙어져 이제는 벽조차 투명하게 비칠 만큼 무거워졌다.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멀리 부두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누군가의 눈동자처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결심했다. 도망치는 것으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이 안개가 걷히기 전에, 자신이 직접 불꽃을 피워 올려야만 했다. 그 불꽃이 자신을 태워버릴지라도.
태오는 가방을 다시 단단히 고쳐 쥐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가 가야 할 길은 안개 너머의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피와 비린내가 진동하는 현실의 한복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