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제11장: 남겨진 잔상

무채색의 파도 · 약 6분

수아의 비명은 빗소리에 섞여 형체 없이 흩어졌다. 태오는 차가운 카페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생명의 온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옆구리를 파고든 통증은 이제 날카로움을 넘어 둔탁한 마비로 변해 있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타들어 가며, 세상의 색채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다시금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냥감을 몰아넣는 포식자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진 채, 무너져 내리는 질서를 목격하는 자의 무거운 보폭이었다. 최 형사였다. 그는 쓰러진 박 실장과 피칠갑이 된 태오를 번갈아 보며, 마치 신의 심판을 목격한 죄인처럼 멈춰 서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최 형사의 목소리는 낮게 떨렸다. 그는 태오를 구하려 달려오는 대신, 그저 멀찍이 서서 이 비극적인 종결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에게 태오는 지워야 할 흔적이었으나, 동시에 이 부패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낸 이질적인 존재였다. 최 형사는 자신이 지켜온 침묵이 결국 이 청년의 피로 얼룩졌음을 깨달은 듯, 고개를 돌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태오 씨, 눈 좀 떠봐요. 제발...!”

수아의 손이 태오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물로 젖어 있었다. 태오는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그녀가 보여주었던 그 결연한 움직임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경로였다.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 카페 뒷문 너머의 숨겨진 통로를 통해 약품과 응급 처치를 준비하려 움직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그 찰나의 경로가 그녀를 이 피비린내 나는 현장으로 끌어들이고 말았다.

태오는 떨리는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 위에 겹쳤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이 허망하게 미끄러졌다. 그는 이제 안개가 걷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안개 너머의 세계로 자신이 스며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가요. 수아 씨.”

그것은 마지막 명령이었다. 태오는 자신이 이곳에 머무는 한, 그녀는 결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박 실장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거대한 해신의 그림자가 움직이게 할 신호탄이었다.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그녀는 평생 이 피의 흔적을 뒤쫓는 사냥개가 되어야 할 터였다.

그는 품 안에서 은색 라이터를 꺼냈다. 동생의 유품.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자, 비로소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듯했다. 동생의 죽음이 해신의 비밀과 어떻게 닿아 있었는지, 그 비릿한 진실이 이 라이터의 불꽃처럼 짧게 명멸했다가 사라졌다. 이제 복수는 끝났다. 무너뜨려야 할 괴물은 쓰러졌고, 남은 것은 오직 이 무거운 삶을 내려놓는 일뿐이었다.

태오는 수아의 손을 뿌리치듯 밀어내며,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안 돼! 어디 가려는 거예요!”

수아의 절규가 뒤통수를 때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안개로 가득 찬 카페의 뒷문을 향해, 피로 물든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는 빗줄기가 쏟아지는 부두의 끝자락으로 달렸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공기는 차갑고 비릿했다.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철근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이 도시의 숨소리 같기도 했고, 죽어가는 자를 부르는 장송곡 같기도 했다.

부두의 끝,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 검은 바다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태오는 멈춰 서서 자신의 손에 들린 은색 라이터를 내려다보았다. 동생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상도 이토록 어둡고 축축했을까.

그는 라이터를 바다를 향해 던졌다.

챙그랑—

은색 물체가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태오의 몸도 함께 기울어졌다. 그는 무거운 몸을 허공으로 던졌다. 중력이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파도가 그를 집어삼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전신을 휘감았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동시에 모든 고통을 씻어내는 안식처럼 느껴졌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그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았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빛의 조각이 명멸하고 있었다. 그것이 구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지옥의 입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 ✦ ✦

카페 '안개의 시간'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수아는 홀로 남겨진 채, 태오가 앉아 있던 빈 의자와 그가 남긴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뿌려놓았던, 이제는 젖어 문드러진 장부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차가운 찻잔을 잡았다. 태오가 마지막으로 마셨을, 온기가 사라진 빈 잔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울음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가슴을 찢는 듯했으나, 그녀는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이 도시의 안개는 슬픔조차 삼켜버릴 만큼 무거웠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두의 끝자락,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처럼, 혹은 무언가 소중한 것이 영영 사라져 버린 뒤의 허망한 울림처럼 길게 이어졌다.

수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태오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작은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움켜쥐고 있었던, 젖은 은색 라이터였다. 그녀가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을 때, 라이터는 차가운 바다의 냄새를 머금은 채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라이터를 가슴에 품고, 안개 자욱한 창밖을 응시했다.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고, 권력의 설계도는 피로 얼룩진 채 흩어졌다. 남은 것은 오직 차가운 바다의 여운과, 채 가시지 않은 슬픔뿐이었다.

도시의 안개는 더욱 짙어져, 이제는 모든 빛을 지워버린 채 무채색의 세계로 침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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