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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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 된 성좌의 노래 · 약 3분

하늘은 은빛으로 타오르는 비늘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축복이라 불렸으나, 대지는 그 자비로운 무게에 짓눌려 비명을 질렀다. 성흔의 비가 닿는 곳마다 초록색 덩굴이 기괴한 속도로 자라나며 죽은 시체의 살점을 파고들었고, 그 생명의 박동은 인간의 이성을 갉아먹는 소음이 되어 전장을 가득 채웠다. 공기는 끈적이는 점성을 띠었고,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는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앗아갔다.

이안은 젖어버린 수첩을 품 안에서 꺼내 들었다. 젖은 종이는 손가락 사이에서 흐물거렸으나,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었다. 펜촉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는 비명보다 작았지만, 그것은 이 지옥 같은 전선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의지가 머무는 성소였다.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해.”

그가 나직하게 읊조린 말은 공중에서 흩어졌다. 성흔의 비는 그가 쓴 글자조차 지워버리려 들었다. 방금 전까지 옆에서 웃으며 탄약을 나르던 동료의 얼굴이 안개처럼 흐릿해질 때마다, 이안은 필사적으로 펜을 움직였다. 그는 기록했다. 오늘 그가 보았던 눈동자의 색깔, 그가 뱉어낸 마지막 농담, 그리고 그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자존심까지.

그때, 바로 옆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들렸다. 돌격병 강민이었다. 그는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로 비틀거리며 이안의 곁에 주저앉았다.

“야, 이안. 나 아직 멀쩡히 살아있어. 내 이름 제대로 적었냐?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다.”

강민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성흔의 비가 뿌려놓은 기묘한 광채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남긴 잔해처럼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강민. 넌 여전히 가장 용감한 놈이야.”

이안은 대답하며 그의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번져갔다.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질 것 같은 위태로운 흔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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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너머에서는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 죽음이 배회하고 있었다. 성흔의 비에 젖은 병사들은 이제 동료를 알아보지 못한 채 서로를 물어뜯거나, 혹은 허공을 향해 울부짖으며 자아를 잃어갔다.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다 거대한 장례식에 가까웠다. 승리도, 영토도 의미가 없었다. 오직 기억을 보존하며 인간으로 남는 것만이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목표였다.

이안은 수첩을 꽉 쥐었다. 은빛 비는 멈출 줄 모르고 쏟아졌고, 그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하나둘씩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기록자가 되어야 했다. 자신과 동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할 유일한 증언자가 되어야 했다. 하늘이 쏟아내는 저주는 잔혹했으나, 그가 쥐고 있는 펜촉 끝에는 아직 타오르지 못한 인간의 존엄이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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