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침묵하는 바다의 경고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서점의 유리창을 가늘게 떨게 했다.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나무 조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 눈빛은 경악을 넘어선 어떤 거대한 공포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점의 문이 다시 한번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닷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남자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내가 가진 그 작은 조각이, 자신이 버린 기억의 파편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라도 되는 양 떨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 안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만큼이나, 그가 내뱉는 질문의 무게가 무거웠다.
그때, 안개 속을 뚫고 나타난 또 다른 그림자가 서점의 정적을 깨뜨렸다. 은우가 아니었다. 단정한 코트 차림에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 백유진이었다. 그녀는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고도 위압적인 걸음걸이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지안아, 그 물건은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었어."
유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명징했다. 그녀는 은우의 걱정 어린 시선과 남자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볍게 무시한 채, 오직 나만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마치 내가 가진 능력을 해부하려는 듯 집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백유진 씨... 여긴 어떻게..."
"질문은 그만해. 지금 네 상태가 어떤지 너만 모르는 것 같아서 온 거니까."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와, 떨리는 내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내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녀는 마치 내가 가진 능력이 소모되어 사라져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수집가처럼 보였다.
"너, 지금 네 안의 빛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니? 기억을 억지로 끌어올릴 때마다, 네가 가진 그 '수선'의 힘이 어떻게 깎여나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녀의 말은 은우의 경고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능력이 무한한 마법이 아니라, 생명력을 깎아 쓰는 유한한 재능임을 강조했다.
"기억을 되찾아주는 대가로 너는 네 존재의 일부를 내놓고 있어. 지금처럼 타인의 봉인된 기억을 강제로 열어젖히면, 결국 네가 가진 마지막 조각까지 그 차가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거야. 그러면 너는 더 이상 기억을 읽을 수도, 수선할 수도 없는 평범하고 무력한 인간이 되어버리겠지."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실제로 내 시야는 조금씩 채도를 잃어가고 있었고, 손끝의 감각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가 이 남자의 기억을 열수록, 나의 세계는 점점 더 무채색의 죽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니야, 지안아."
유진이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낮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강도윤은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봉인한 거야. 그가 숨겨둔 그 푸른 기억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유진의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입술은 힘없이 떨릴 뿐이었다.
"당신이 스스로를 가둔 이유가, 단순히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 기억 속에 담긴 무언가가,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이 마을의 평온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유진의 시선이 남자의 시계를 훑었다.
"그 시계 속에 숨겨둔 건, 당신의 가장 아픈 상처인 동시에 가장 찬란했던 진실이잖아요. 그걸 억지로 열려고 하는 저 아이의 무모함이, 결국 당신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생각은 해봤나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내 손 안의 작은 나무 조각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유진은 내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이 남자의 기억을 수집하고 싶어 하는 탐욕스러운 존재였지만, 지금 그녀가 내뱉는 경고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나의 능력이 소모되고 있다. 이 남자의 기억을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나의 조각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었다. 만약 이 문을 완전히 열어젖힌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 되어 있을까. 기억을 읽을 수 없는, 색채가 사라진 무채색의 세계 속에서 홀로 남겨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안아, 그만해. 제발..."
은우가 내 팔을 잡으며 애원했다. 그의 눈에는 나를 향한 연민과, 저 남자가 가져올 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손끝에 닿은 이 차가운 진실이, 내가 평생을 바쳐온 고독한 삶의 끝에서 마주한 유일한 해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록 그 대가가 나의 소멸일지라도, 이 남자가 스스로를 가둔 그 거대한 침묵의 끝을 확인해야만 했다.
남자는 이제 유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오직 나를,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그 작은 나무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내가 열어젖힌 이 지독한 진실의 문이 자신을 집어삼키기를 기다리는 듯한, 처절한 체념을 담고 있었다.
서점 밖의 파도 소리는 더욱 거세졌고, 안개는 이제 서점의 문틈을 타고 들어와 우리들의 발치까지 하얗게 차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