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제7장: 포식자와 사냥꾼

무채색의 유영 · 약 8분

준오가 발을 내디딘 보도블록 위로 빗물이 튀어 올라 그의 바짓단을 적셨다. 거대한 빛의 제국, '레테'의 본사는 하늘을 찌를 듯한 백색의 탑이 되어 안개 낀 밤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차갑고 매끄러운 외벽은 마치 인간의 감정이 거세된 사회의 얼굴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는 가방 속의 수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정교한 복수가 아니라, 짓밟힌 진실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뿐이었다.

그가 본사 로비의 거대한 유리문 앞에 다다랐을 때, 예기치 못한 그림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 소리 없이 나타나 그를 에워쌌다. 저항할 틈도 없이 그들의 손이 준오의 어깨를 눌렀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으나, 전직 형사로서의 완력조차 이 거대한 시스템의 물리적 압박 앞에서는 무력했다.

"강준오 씨, 오랜만이군요. 당신의 발걸음이 너무 성급했습니다."

차갑고 우아한, 그러나 감정이 거세된 목소리가 빗줄기를 뚫고 날아와 그의 귓가에 박혔다. 준오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응시했다. 검은 차량의 뒷좌석에서 내린 여인, 한서윤이었다. 그녀는 젖은 공기조차 정화할 듯한 결벽적인 우아함을 두른 채, 무채색의 도시를 지배하는 여신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준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연민도, 경계도 없었다. 오직 정교하게 계산된 관찰만이 존재했다.

"당신이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공백뿐이에요."

"공백을 만드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야."

준오가 짓씹듯 내뱉었다. 목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그녀를 겨누었다.

"민우가 본 것이 무엇인지, 당신들이 제조하는 그 붉은 액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다 알게 될 거다."

서윤의 입가에 아주 미미한, 조소에 가까운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구두 굽이 젖은 지면을 울리는 소리가 마치 사형 집행인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민우 군은 너무 호기심이 많았죠. 호기심은 통제된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불순물입니다. 그는 그 불순물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 불순물이 되어 사라진 거예요."

그녀의 말은 잔인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녀는 준오의 곁을 지나치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지운 그 기억들,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결과일까요?"

✦ ✦ ✦

서윤과 대면한 후, 준오는 거대한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보며 강제로 구금된 상태로 그녀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통유리로 된 집무실은 마치 하늘 위를 유영하는 고립된 섬 같았다. 서윤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지웁니다. 그건 진화예요. 슬픔과 죄책감이라는 불필요한 감정을 걷어내고, 오직 효율적인 삶만을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완벽한 사회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교한 기계 장치의 구동음처럼 매끄러웠다. 준오는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도시의 불빛을 응시했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기억을 도려낸 대가로 얻은 가짜 평온이라는 사실이 피를 말리는 듯했다.

"효율적인 사회라니, 그건 시체들의 무덤이나 다름없어."

"시체라니요. 죽음보다 더 평온한 상태를 그렇게 부르다니, 당신은 여전히 감정의 과잉 속에 살고 있군요."

서윤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이제 준오를 인간이 아닌, 관리해야 할 변수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그 '붉은 빛' 말입니다. 그것은 오류가 아닙니다. 인간의 자아를 완전히 해체하여, 순수한 의식의 상태로 유도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죠. 다만, 그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신경계의 붕괴가 일어날 뿐입니다."

그녀의 말에 준오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붉은 빛은 부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설계된, 인간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한 '해체'의 과정이었다.

"부작용이 아니라... 의도된 거였나?"

"그렇죠. 인간은 고통을 기억할 때 저항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근원인 '자아' 자체를 부스러뜨린다면, 저항할 주체는 사라지게 되죠. 당신이 스스로 기억을 지웠던 그 순간도, 사실은 당신의 자아를 더 완벽하게 정제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서윤의 말은 준오의 머릿속을 난도질했다. 자신이 스스로를 지운 것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니. 그 공포스러운 사실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당신은... 당신은 괴물이야."

"괴물이라니요. 나는 신이 되고자 하는 인류의 열망을 실현하는 설계자일 뿐입니다."

그녀는 우아하게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당신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당신이 찾아낸 그 작은 펜던트와 숫자들, 그것들은 이미 내 손안에 있으니까요. 당신이 추적해온 모든 경로는 내가 설계한 미로 안에서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준오는 주머니 속의 펜던트를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민우의 흔적을 따라온 이 모든 과정조차 그녀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의 유영이었단 말인가.

그때, 서윤이 준오에게 다가와 그의 손목에 있는 흉터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 흉터가 점점 더 붉게 변하고 있군요. 약물의 농도가 당신의 신경계를 잠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머지않아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조차 떠올릴 수 없게 될 거예요. 그것이 당신이 도달할 최종적인 평온입니다."

그녀의 말은 저주이자 예언이었다. 준오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어둠뿐이었지만,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이제 명확한 형체를 가진 분노를 목격했다. 그것은 자신이 지워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이 끔찍한 기억의 고통뿐이라는 것을. 기억이 사라질수록 인간은 평온해지지만, 진실을 밝힐 힘 또한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는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기 전,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마지막 불꽃을 일으켜야 했다.

그는 서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녀의 완벽한 세계에, 단 한 줄의 오답을 적어넣기 위해.

✦ ✦ ✦

집무실을 나서는 준오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다른 기괴한 광기를 머금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이제는 벽을 때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는 자신을 감시하는 눈길들을 느끼며, 어둠이 깊게 깔린 복도를 지나 탈출구를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서윤이 남긴 말들이 독처럼 퍼지고 있었다. 자아를 해체하는 과정. 붉은 빛의 정체. 그리고 자신의 흉터가 의미하는 종말. 모든 조각이 하나의 잔인한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그는 가방 속에서 경찰 시절의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그 첫 페이지, 민우의 이름 옆에 적어두었던 짧은 문장을 보았다. '진실은 기억보다 강하다.'

그는 이제 그 문장이 틀렸음을 증명해야 했다. 진실은 기억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지만, 그 진실이 남긴 상처는 육체에 낙인처럼 남아 끝까지 저항하기를 거부하는 법이다.

그는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멀리 보이는 거대한 백색의 탑을 향해 다시 한번 시선을 던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기억의 해체가 완료되기 전, 이 무채색의 신화를 무너뜨려야 했다.

준오는 빗물에 젖은 길을 따라,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향하는 듯한 걸음으로 다시 어둠 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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