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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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유영 · 약 2분

도시 무영의 밤은 빛을 삼킨 채 무채색의 침묵만을 내뱉는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빌딩들은 거대한 비석처럼 서 있고, 그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네온사인은 채도가 빠진 빛줄기를 바닥으로 흩뿌린다. 사람들은 그 인공적인 빛 아래에서 자신의 슬픔을 도려낸 채, 매끄럽게 다듬어진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간다. 고통을 지운 자리에 남은 것은 평온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한 허무뿐이다.

그 차가운 흐름 속에서, 시간은 박제된 채 멈춰 있었다.

준오는 습기 머금은 골목 끝, 낡은 수집품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 있었다. 손끝에 닿는 물건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품고 있었지만, 정작 그 시간을 기억해야 할 이의 머릿속은 안개 자욱한 벼랑 끝처럼 아득했다. 그는 가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휩싸이곤 했다.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의 일부분을 통째로 도려내 간 것처럼, 삶의 문장들이 중간중간 끊겨 있었다.

그때였다. 낡은 태엽 시계 하나가 준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먼지 쌓인 유리 너머로 보이는 시계의 초침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리듬은 어딘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준오는 홀린 듯 시계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시계의 뒷면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 안에는 태엽 장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고, 빛바랜 유품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일었다. 찢겨나간 기억의 파편들이 날 선 파편이 되어 뇌를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잊어야만 했던, 아니,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지워졌던 기억의 심연이 검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떨리는 손끝에서 시계가 미끄러졌다.

"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신음은 공허한 방 안을 유영하다 무채색의 벽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자가 마주한, 잔인하고도 명백한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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