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지워진 영웅

유실된 것들의 기록소 · 약 6분

그는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나 모든 것을 지켜낸 유일한 존재로서 그 길을 걸어갔다.

밤의 도시는 여전히 화려했다. 전광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빛은 사람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었고, 거리에는 활기찬 소음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이 평온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보도블록 아래,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태워 없애며 지탱해낸 평화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결은 그 군중 속을 유영했다. 그는 이제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자, 동시에 그들의 일상을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다.

이결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정화 장치의 과부하로 인해 새겨진 검은 낙인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그저 그가 무언가를 끝냈다는, 혹은 무언가를 지워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는 차가운 흉터에 불과했다. 그는 그 낙인을 보며 아주 잠깐,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 존재의 일부가 잘려 나간 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에 가까웠다.

그는 멈춰 서서 깊은 숨을 들이켰다. 공기는 맑았다. 던전의 비릿한 피 냄새도, 잔류사가 뿜어내던 질척이는 슬픔의 잔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자동차 매연과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도시의 활기찬 리듬만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이결은 그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았지만, 이 공기가 주는 평온함만큼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 ✦ ✦

며칠이 지났을까. 이결은 다시 익숙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작업복이라기보다 그에게 주어진 유니폼에 가까웠다. 그는 이제 정부나 협회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던전이 닫힌 후 남겨진 잔해를 치우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도시의 위생을 관리하는 청소부였다.

그는 새벽의 정적을 가르는 빗자루 소리에 익은 듯 움직였다. 아무도 없는 공원의 한구석, 혹은 화려한 빌딩 사이의 좁은 골목. 그는 그곳을 쓸었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을 다시 한 번 훑고 지나가는 그의 손길은 기계적이었으나, 그 끝에는 기묘한 정성이 묻어 있었다. 그는 무엇을 지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지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지워진 것들이 이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한다는 사실만을.

"이결 씨."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결은 고개를 돌렸다. 수현이었다. 그녀는 그를 찾아온 듯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수첩과 인형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경외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찾았어요. 당신이 지워버린 것들 중에서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수첩을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이결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나 그가 지불한 대가로 지켜낸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남긴 사소한 흔적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결이 잃어버린 자아의 파편들이자, 그가 지켜낸 세상의 증거들이었다.

이결은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글자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이 사람과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수현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상한 파동을 느꼈다. 그것은 이전에 그가 느꼈던 '의무'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이건... 제 것이 아니네요."

그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수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결은 이제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그가 어떤 고통 속에서 자아를 깎아냈는지, 그가 어떤 표정으로 마지막을 견뎠는지... 그 모든 것은 이제 이 수첩 안에만 존재하는 기록이 되었다. 이결은 이제 그 누구보다도 고독한 존재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래요. 이제 당신의 것이 아니죠."

수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당신은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 당신이 지워준 이 세상에서, 당신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면 돼요."

이결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빗자루를 잡았다. 그는 이제 이름 없는 청소부로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승리의 흔적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빗질을 할 때마다 지워지는 먼지들은 그가 지워버린 기억들의 잔해와 닮아 있었다.

그는 이제 홀로 남겨진 길 위에서, 자신이 지워버린 것들의 흔적을 쫓는 대신, 지워진 것들이 남긴 평온을 만끽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공기의 파동은 마치 그가 버리고 온 기억들의 마지막 인사와도 같았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나 모든 것을 지켜낸 유일한 존재로서 그 길을 걸어갔다.

수현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첩을 품에 안았다. 그녀는 이제 이 세계의 유일한 기록자였다. 이결이 지워버린 모든 것들, 그리고 그가 지켜낸 이 모든 평온의 무게를 오직 그녀만이 기억하는 증언자가 되었다.

이결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빗질을 했다. 텅 빈 거리,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는 오늘도 이름 없는 청소부로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얻은 가장 고독하고도 온전한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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