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피로 물든 기록

유실된 것들의 기록소 · 약 6분

다음 날 새벽, 공기는 더욱 무겁고 질척였다. 이결과 수현, 그리고 두 명의 추가 인원이 배치된 작업지는 던전의 심장부로 향하는 '심연의 통로'였다. 이곳은 일반적인 던전보다 잔류사의 농도가 지독하게 짙어, 공기 자체가 검은색의 입자로 뭉쳐져 피부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이결은 방독면의 필터를 한 번 더 점검하며 무거운 정화 장치를 어깨에 메었다.

"이 구역은... 일반적인 잔류사와는 결이 달라요. 마치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벽에 박혀 있는 것 같아요."

수현이 수첩을 움켜쥐며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이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감각을 마비시키는 법을 익힌 자였다. 하지만 오늘, 그는 예정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했다. 협회는 이 구역의 '오염도'가 임계치에 도달했으나, 이를 방치할 경우 인근 민간 지역까지 정신 오염이 확산될 것이라며 긴급 정화를 명령했다.

그들은 통로를 지나며 기이한 풍경을 마주했다. 벽면에는 인간의 피부를 닮은 가죽들이 층층이 겹쳐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생태계의 파편이라기보다, 인간의 의지가 뭉개지고 뒤틀린 결과물이었다.

"정화 시작해."

이결의 명령에 팀원들이 일제히 장치를 가동했다. 푸른 빛이 쏟아져 나오며 검은 잔상을 밀어냈으나, 그럴 때마다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뇌를 직접 타격하는 파동이었다. 이결은 순간적으로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통로의 끝, 거대한 돌기둥 뒤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

"이건... 사람인가요?"

수현의 물음에 이결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그러나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한때 헌터였을, 혹은 민간인이었을 존재였다. 사지는 기괴하게 꺾여 벽에 박혀 있었고, 얼굴은 비대하게 부풀어 올라 눈과 입이 사라진 채 검은 잔류사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죽어가면서도 살아있었으며, 죽었음에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정도 오염 속에서 이 정도의 형체를 유지하다니."

동료 중 한 명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결은 그 앞에 섰다. 그 존재는 이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없는 안와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가 이결의 방독면 앞유리에 닿았다. 순간, 이결의 시야가 흐려지며 환각이 밀려왔다.

그것은 누군가의 어머니가 자식을 잃고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아니, 그것은 수만 명의 절망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집단적인 비명이었다. 이결은 보았다. 인간이 공포에 질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괴물로 변해가는 찰나의 순간을.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이었다.

"그만... 보지 마!"

수현의 외침이 이결의 의식을 현실로 끌어내렸다. 이결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든 정화 장치가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건... 슬픔이 아니야. 찌꺼기야."

그는 다시 스스로를 속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방금 본 환영은 단순한 잔류사의 잔상보다 훨씬 선명했다. 그것은 마치 이결의 기억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은 기분 나쁜 잔향을 남겼다. 이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이 존재가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고통 속에서 이 끔찍한 형상이 되었는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미 그의 뇌리에는 그 비극적인 잔상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이결은 정화 장치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눈부신 푸른 빛이 그 존재를 덮쳤다. 비명은 공중에서 찢어지며 사라졌고, 기괴하게 뒤틀렸던 육체는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정화 완료."

이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는 차갑게 돌아서며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방금 전 느꼈던 그 기묘한 파동이 여전히 잔류하고 있었다.

✦ ✦ ✦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결은 수현과 나란히 걸었다. 수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결이 오늘 무엇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지.

"이결 씨, 우리가 정말 지우고 있는 게 무엇인지... 가끔은 무서워요."

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결은 잠시 멈춰 섰다. 그는 먼 곳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지우지 않아. 그저 보이지 않게 만들 뿐이지."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우는 것은 오염이 아니라,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무게라는 것을. 그리고 그 슬픔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협회 본부 근처에 도착했다. 이결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번 작업의 결과 보고서를 정리하던 협회 관계자의 책상이 있었다. 이결은 무심코 그 책상 위에 놓인 보안 등급이 높은 문서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잔류사 에너지 추출 및 관리'에 관한 비밀 보고서였다. 문서의 한 귀퉁이에는 붉은색 글씨로 '기억의 희생'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결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기억의 희생'. 그것은 단순한 은폐가 아니었다. 이들은 인류의 기억을 소모하여 도시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모든 시스템이 누군가의 기억을 제물로 삼아 유지되는 거대한 기계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정화되지 않은, 더 깊고 어두운 기억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는 아까 보았던 그 존재의 비명이, 마치 주파수처럼 낮은 진동이 되어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가 그를 부르는 듯한, 아주 낮고 불길한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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