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지워진 신화

무너진 신들의 잔해 · 약 5분

한결은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딛고 올라갔다. 비틀거리는 몸은 이제 의지조차 배반하는 듯했다. 마비된 근육은 그를 끌어올리는 힘이 아니라, 그저 중력에 순응하는 고기 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도시의 가장 높은 곳, 한때 사람들의 환호가 닿았던 전망대의 잔해 위에 몸을 뉘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곳에 오르지 않으며, 누구도 그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앉아야만 했다. 멸망해가는 도시의 마지막을, 가장 높은 곳에서 증언해야 하는 자의 의무였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노을은 지독하게도 선명했다. 그것은 단순한 저녁의 빛이 아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대기 속에서 산란하는 광학적 현상이었으나, 한결에게는 그것이 마치 피를 흘리는 거대한 상처처럼 보였다. 잿빛 먼지로 가득 찬 하늘이 찢어지며 드러난 붉은색은, 그가 지키지 못한 수많은 생명의 마지막 비명이 응고되어 만들어진 색채였다. 노을은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하게 타올랐고, 그 빛은 한결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려와 그의 주름진 얼굴과 찢겨진 방호복을 적셨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가 수집해온 주인 없는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가 폐허 속에서 주워 담았던 조각들—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 아이의 웃음소리, 혹은 누군가와 나누었던 따뜻한 저녁 식사의 온기. 그것들은 초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간 이들이 남긴, 가장 인간적인 흔적들이었다. 한결은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는 그들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는 청소부였으나, 이제는 그 슬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영웅이라는 이름의 방패는 깨졌고, 초월적인 힘은 신경계를 태워 없앴다. 그는 이제 그저 멸망의 속도에 쫓기는, 아주 작고 초라한 인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기묘한 해방감이 그를 덮쳤다.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모든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불가능한 사명, 그리고 그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파괴했던 시간들이 노을 속에 녹아내렸다.

"태윤아, 너도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그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태윤은 파괴자가 되었으나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은 파괴가 아니라, 이 지독한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한결은 이제야 이해했다. 그들이 공유했던 공포는 힘의 상실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립이었다. 태윤은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부쉈고, 한결은 그 고독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며 타인을 지키려 했다. 두 사람 모두, 멸망이라는 거대한 배경 앞에서 외로운 섬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한결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슬픔을, 마치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었다. 그 어떤 신성한 기적도, 죽은 자들의 부활도 없었다. 그저 살아남은 자가 겪어야 하는, 지독하게도 인간적인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을 온전히 껴안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영웅이 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오늘 하루를 견디고 내일의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로 남으면 그만이었다. 한결은 가만히 숨을 내뱉었다. 그 숨은 차가운 공기와 섞여 흩어졌지만, 그의 폐부 깊숙이 박힌 고독은 이제 그에게 익숙한 옷처럼 느껴졌다.

그는 눈을 떴다. 노을은 이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며 도시를 보랏빛 그림자로 덮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결은 자신이 수집했던 기억들 중 가장 따뜻했던 조각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살아있어 주어서 고맙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그는 그 문장을 가슴에 새겼다.

그는 이제 영웅의 망토도, 관리자의 방호복도 필요 없는 인간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 앉아, 사라져가는 것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고독한 관찰자가 되었다. 멸망은 계속될 것이고, 도시는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겠지만, 그는 이제 그 붕괴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한결은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그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진실과 마주하며, 지는 노을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영웅 시대를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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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도시의 잔해 위로 차가운 밤공기가 내려앉았다. 한결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가 수집했던 수많은 사람의 생애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멸망이 남긴 가장 고귀한 유산이었다. 그는 그 유산을 품은 채, 이제는 영웅도, 관리자도 아닌, 그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무게를 견디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았고, 그곳에는 더 이상 어떤 경고등도, 어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고요한 정적만이 그를 감싸 안았다. 그것은 멸망의 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얻어낸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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