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장례
한결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뺨을 댄 채 헐떡였다. 폐허의 잔해는 거대한 무덤처럼 그를 덮치고 있었고, 공기는 비릿한 먼지와 타버린 금속의 냄새로 가득했다. 시야는 여전히 노이즈로 얼룩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 노이즈조차 흐릿하게 느껴졌다. 감각이 사라진 손끝은 무력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그 표면이 얼마나 거친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지독한 통증만은 선명했다. 그것은 신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영혼이 찢겨 나가는 듯한, 실체 없는 비명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태윤이 처박힌 잔해 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정적보다 더 깊은 침묵이 그를 억눌렀다. 무너진 구조물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비명은 멈췄다. 그 비명은 태윤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도시의 마지막 신음이었을까. 한결은 떨리는 손으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을 헤치고 그 아래를 살폈다.
그곳에는 태윤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태윤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으스러진 골조와 뒤엉킨 철근 사이로, 한결이 쏟아부은 마지막 의지가 남긴 흔적만이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다. 태윤은 죽었다. 아니, 한결은 그를 죽였다. 그는 태윤을 멈추려 했으나, 그가 한 행동은 태윤의 파멸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다.
"태윤아..."
한결의 목소리는 갈라진 땅바닥을 긁는 소리처럼 볼품없었다. 그는 그를 구원했다는 자부심에 도취될 수 없었다. 그가 한 것은 그저 멸망의 속도를 조금 늦춘 것뿐이었고, 그 대가로 태윤이라는 한 인간의 생을 앗아갔다. 한결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파괴자의 손이 되어, 동료의 마지막을 도려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주저앉았다. 영웅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진 자리에는, 그저 죄책감에 질린 한 인간의 초라한 몰골만이 남았다. 그동안 그를 지탱해왔던 사명감, 타인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백색의 수호자'라는 화려한 이름이 모두 먼지처럼 흩어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그가 수습해온 주인 없는 기억들의 파편들뿐이었다. 그 기억들은 이제는 사라진 이들의 슬픔이었고, 그 슬픔은 이제 한결의 것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이나 지키려 했던 것들이 사실은 이미 멸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멸망의 잔해를 치우는 청소부였고, 그 청소의 끝에 마주한 것은 죽음의 적막뿐이었다. 한결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곳에는 태윤과 공유했던 고독이 응어리져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시대의 영웅이었고, 같은 무게의 짐을 짊어졌으며, 같은 공포를 공유했다. 하지만 한결은 그 공포를 견디기 위해 태윤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는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폐허가 된 쇼핑몰은 대답 대신 차가운 바람만을 돌려보냈다. 한결은 자신의 손등에 묻은 먼지를 보았다. 그것은 태윤의 마지막 흔적이었고, 한결이 짊어져야 할 영원한 낙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윤을 멈춘 것이 아니라, 그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음을 인정했다. 영웅은 죽었고, 그가 지키려 했던 것들은 이미 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살아있는 자의 슬픔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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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음이 점차 멀어졌다. 변이체들의 울부짖음도, 붕괴하는 건물의 굉음도 이제는 아득한 잔향처럼 느껴졌다. 한결은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신체 마비로 인해 감각이 사라진 몸은 이제 차가운 바닥과 하나가 된 듯 느껴졌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이 수집했던 수많은 이들의 기억들, 그들이 남긴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그 모든 기억을 품에 안았다. 그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한 인간이 자신들의 마지막을 지켜봐 주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한결은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도망치지 않고, 부정하지도 않은 채, 그 무거운 슬픔을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는 독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잿빛 먼지로 가득 찬 하늘 사이로,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노을이 번져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피를 흘리는 상처처럼 붉고도 처절한 색채였다. 멸망해가는 도시를 적시는 그 노을은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했다. 한결은 그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그는 아무도 구할 수 없으며, 자신 또한 더 이상 누군가의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이제 영웅이라는 무거운 망토를 벗어 던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고독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멸망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다가오는 상실의 무게가 그를 짓눌렀지만, 그는 그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그것은 그가 태윤과 나누었던, 그리고 이제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고독의 무게였다.
한결은 가만히 숨을 내뱉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 속에서, 그는 이제야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노을은 점점 더 붉게 타올랐고, 그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는 더 이상 영웅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곳에 앉아, 지는 노을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고독한 관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