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광기의 잔향

무너진 신들의 잔해 · 약 7분

그 시선은 끈적이고도 날카로운 가시처럼 한결의 피부를 찔러왔다. 먼지 섞인 공기 속에서 그 시선은 형태를 띠지 못한 채 떠돌았으나, 한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굶주린 변이체의 안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하게 인간적인, 그러나 인간의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광기의 파동이었다. 한결은 방호복의 가슴팍에 매달린 충격기를 움켜쥐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헬멧의 필터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경고등을 점멸했다.

"그만해라. 그 지겨운 연극은."

그림자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결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먼지 구름이 걷히며 드러난 형체는, 한때 인류의 희망이라 칭송받았던 영웅의 잔해였다. 강태윤. 한결과 같은 시대를 관통하며, 같은 무게의 짐을 짊어졌던 동료.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한때의 위용을 비웃듯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는 공기가 뒤틀리는 듯한 잔상이 남아 있었고, 그가 서 있는 바닥은 마치 무거운 압력에 눌린 듯 미세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태윤아."

한결의 목소리는 갈라진 땅바닥처럼 메말라 있었다. 태윤은 대답 대신 기괴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폐허의 잔해에 부딪혀 불쾌한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타오르는 불꽃 같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

"한결, 아직도 그 쓰레기 같은 수첩에 죽은 자들의 이름을 적고 있는 건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들이 살아 돌아오나? 아니면 네가 그들의 고통을 대신 가져가서라도 지워줄 수 있나?"

태윤이 한 걸음 내디뎠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돌가루와 파편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압도적인 염력의 파동이었다. 한결은 느껴졌다. 태윤의 힘은 이제 통제되지 않는 폭주하는 파도와 같았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뿜어져 나오는 자폭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너는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려 하고 있군. 하지만 봐라, 이 도시를 보란 말이야. 지켜야 할 것은 이미 재가 되었고, 네가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이제 이름 없는 변이체의 먹이가 되었다. 억지스러운 집착이 너를 이 지옥에 묶어두고 있는 거야."

태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쇼핑몰의 천장 일부가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폭사하며 시야를 가렸지만, 한결은 태윤의 광기 어린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지 아나? 그것은 굴레를 벗어던지는 거야. 영웅이라는 이름의 사슬,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 그리고 이 썩어가는 세계의 의무까지 전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완전한 공백 속으로 투신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해방이다."

그는 도시의 핵심 에너지원인 지하 전력망을 노리고 있었다. 그곳이 파괴되면 이 구역의 모든 생명 유지 장치와 방어벽이 무너질 것이며, 도시는 그야말로 완전한 죽음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태윤은 그것을 파멸이라 불렀고, 한결은 그것을 종말이라 읽었다.

"태윤아, 멈춰라. 네가 말하는 자유는 파멸일 뿐이다. 네가 파괴하려는 것은 이 도시가 아니라, 네 스스로의 마지막 자존심이야."

한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신경계의 마비 증세가 다시 한번 전신을 강타했다. 왼쪽 팔이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졌고, 시야는 검은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한결은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제 영웅으로서의 힘을 쓸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낡은 방호복과, 타들어 가는 신경계의 고통, 그리고 단 한 줌의 인간적인 의지뿐이었다.

"자존심? 하!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지? 이 끔찍한 고독을 잊게 해준다면, 내 자존심 따위는 기꺼이 던져버릴 수 있어!"

태윤이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염력의 파도가 한결을 덮쳤다. 한결은 뒤로 밀려나며 바닥을 굴렀다. 가슴팍의 산소 잔량 표시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폐허의 잔해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그의 몸을 찔렀다. 한결은 신음하며 손을 뻗었다. 그는 태윤을 멈춰 세워야 했다. 아니, 그를 말려야 했다.

그때였다. 한결은 태윤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분노도, 파괴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하게도 익숙한 공포였다. 자신을 갉아먹는 고독,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절망,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계 속에서 홀로 버티는 자의 비명. 태윤은 그토록 파괴를 외치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너도 나랑 똑같아, 태윤아. 너도 나처럼 무서워하고 있잖아. 이 고독이, 이 지옥이 무서워서 그러는 거잖아."

한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동질감이었다. 태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는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했다.

"입 닥쳐... 그딴 말은 하지 마라!"

태윤이 다시 분노를 터뜨리며 힘을 끌어올렸다.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팽창했다. 한결은 느껴졌다. 태윤의 힘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그가 힘을 더 쏟아부을수록, 그의 정신은 더 빠르게 붕괴될 것이며, 결국 그 자신마저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한결의 손 끝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마지막 에너지를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 순간, 한결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등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신체 기능 마비율 85% 초과. 과부하 위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한결은 자신의 손등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땀을 느꼈다. 그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자신 또한 저 무너지는 잔해 속에 묻힐 것이라는 사실을. 한결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다시 한번 태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래, 무서워하자.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함께 무너질 수는 없어."

한결의 낮은 읊조림이 먼지 가득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태윤의 눈에 서린 광기는 더욱 짙어졌고, 주변의 구조물들은 거대한 폭풍에 휘말리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이제 불과 몇 걸음뿐이었다. 죽음과 파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두 시대의 영웅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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