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잿빛의 파수꾼

무너진 신들의 잔해 · 약 5분

잿빛 먼지가 폐허의 골목마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한결은 무거운 방호복의 무게를 온전히 어깨로 지탱하며, 찢겨진 전선과 깨진 유리 파편이 널브러진 골목을 지나갔다. 매 걸음마다 장화 밑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고막을 자극했고, 그것은 적막한 도시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비명이었다. 그는 헬멧의 전방 투사 장치를 켰다. 희미하게 점멸하는 푸른색 광원이 먼지 섞인 공기를 가르며 벽면에 새겨진, 이제는 알아볼 수 없는 상점의 간판과 부서진 의자들을 비추었다.

그는 멈춰 섰다. 발치에 흩어진 종이 뭉치들이 보였다. 그것은 누군가의 일기장이었을까, 혹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였을까. 한결은 무릎을 굽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방호복의 두꺼운 장갑 때문에 손끝의 감각은 무디었지만,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종이를 펼쳤다. 잉크는 번져 있었고, 문장은 비문으로 가득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 내일은... 내일은 웃으며 인사할 수 있기를.'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증명이 아니라 유예일 뿐이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말은 공중에 흩어지자마자 차가운 공기에 깎여 나갔다. 한결은 그 종이 조각을 수첩의 빈 페이지에 옮겨 적었다. 그는 이것을 '수집'이라 불렀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하여, 죽음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기 전에 잠시나마 이 세상에 머물게 하는 행위. 그것은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장 비참하고도 숭고한 의무였다.

그때, 신경계의 마비 증세가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왔다. 왼쪽 팔이 마치 타오르는 인두로 지진 듯이 저려왔고, 시야는 순간적으로 암전되었다. 한결은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차가운 콘크리트의 질감이 손등을 타고 전해졌다. 그는 가쁜 숨을 몰려 쉬며 가슴팍에 달린 산소 잔량 표시등을 확인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과거의 기억이 환상처럼 밀려왔다.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백색의 수호자'. 그 시절 그는 하늘을 가르는 백색의 섬광이었고, 사람들은 그가 휘두르는 힘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빛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그저 낡은 수첩과 누군가의 죽음이 묻은 종이 조각뿐이었다. 영웅은 죽었다. 그가 죽인 것은 적이 아니라, 그를 찬양하던 시대의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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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과거 대형 쇼핑몰이었던 건물이었다. 이제는 뼈대만 남은 건물의 내부에는 변이체의 점액질이 말라붙어 있었고, 기괴하게 뒤틀린 구조물들이 마치 고통받는 거인의 사체처럼 엉켜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았다. 그는 관리자였다. 누군가 이곳에서 죽어갔다면,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 흔적을 수습해야 했다.

그는 무너진 매장 입구 근처에서 작은 금속 펜던트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 같은 작은 펜던트였다. 한결은 그것을 집어 들고 잠시 멈췄다. 펜던트에는 '민준'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억을 더 아프게 만드는 법이지."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를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게. 그는 수첩에 오늘의 기록을 덧붙였다. [민준의 펜던트. 주인을 잃은 금속의 무게. 잊히지 않도록 이곳에 두었다.]

그의 몸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통증보다 더 깊은 공포가 밀려왔다. 변이체의 울부짖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그것은 짐승의 소리라기보다, 인간의 비명이 뒤틀려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한결은 허리춤에 매달린 방호복용 소형 충격기나 장비를 점검했다. 이제는 그 시절처럼 화려한 초능력을 쓸 수 없었다. 힘을 쓸 때마다 신경계는 타들어 가고, 의식은 희미해졌다. 그는 이제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지로 이 지옥을 견뎌야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무너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가 지켜야 할 것들이 아직도 저곳에 숨 쉬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차가운 잔해로 변했을까. 한결은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다시 잿빛 먼지가 자욱한 복도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의 발소리가 울릴 때마다, 무너진 건물은 마치 신음하듯 비명을 질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도시를 구할 수는 없다. 멸망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는 그 멸망의 속도를 단 몇 초라도 늦추는 청소부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청소는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가 수집하는 기억들은, 이 망가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였다.

그는 문득 멈춰 섰다. 저 멀리, 폐허의 그림자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변이체도, 그렇다고 살아남은 생존자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익숙한,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낯설어진 어떤 존재의 그림자였다. 한결의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는 방호복의 헬멧을 고쳐 썼다.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고, 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공포보다도 더 깊은, 지독한 고의성이 담긴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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