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뒤틀리는 현실과 영적 부패

사후세계 배달 서비스: 유령도 배고프다니까요 · 약 7분

하은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밀려오는 서늘한 감각을 억눌렀다. 손끝에 전해지는 핸들의 진동이 마치 거대한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 용산 방공호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강제로 경로를 비틀었을 때 느껴졌던 그 불쾌한 이질감, 그리고 배달이 끝나는 순간 벽면의 문양에서 빠져나갔던 기묘한 빛의 잔상.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생명이 말려 올라가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화면에는 다음 배달 요청이 떠올랐다. [배달 요청: 종로구 서촌 인근, 좁은 골목 안쪽 주택. 따뜻한 단팥죽(설탕 듬뿍)]. 하지만 이번에는 위치 정보 옆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노골적으로 박혀 있었다. [경고: 영적 부패 위험 수준 '심각'. 배달 지연 시 현실 공간 붕괴 위험.]

"영적 부패라니, 이번엔 무슨 괴물이라도 나온다는 소리네."

하은은 짐짓 씩씩하게 말하며 오토바이를 몰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되는 '에너지 수치'를 쫓고 있었다. 배달을 완료할 때마다 숫자가 올라가는 그 수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촌의 골목은 평소보다 훨씬 더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가로등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져 마치 끈적이는 타르처럼 바닥에 흘러내렸고, 벽면의 벽돌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피부처럼 불규칙하게 꿈틀거렸다. 공기는 차갑다 못해 날카로웠다. 하은이 골목 깊숙이 들어설수록, 현실의 풍경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기괴한 색채의 왜곡이 채워갔다.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사장님, 여기 인테리어 컨셉이 '종말'인가요?"

하은이 헬멧을 벗으며 억지 웃음을 지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골목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안개에 고정되었다. 안개는 단순히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질량을 가진 것처럼 주변의 공간을 짓누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의 비명과도 같은 기괴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하은 씨,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마세요. 이 구역은 영적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차분한 목소리에 하은은 어깨를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남자, 민준이 서 있었다. 그는 하은과 대조적으로 아주 차분하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민준 씨? 여긴 어떻게..."

"전문가로서의 조언입니다. 이 구역의 영적 부패는 단순히 죽은 자들의 미련이 쌓여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에요. 시스템이 배달 경로를 강제로 조정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이죠. 배달이 지연될수록 현실의 물리 법칙이 영적 에너지에 잠식당하고 있어요."

민준은 스마트폰과 연결된 측정 장치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지금 이 골목은 현실과 영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배달이 늦어지면 이 골목 전체가 영적 부패의 영역으로 영구히 고착될 거예요. 빨리 배달을 완료해야 합니다."

하은은 민준의 말을 들으며 다시 배달 가방을 고쳐 멨다. 그의 설명이 덧붙여지자 상황의 엄중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단순한 '불편한 고객'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골목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방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가구들은 공중에서 뒤틀려 있었고, 바닥은 마치 액체처럼 흐물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뭉쳐진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배고픔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주변의 공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단... 팥... 죽... 뜨겁게..."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 공기를 찢는 파열음에 가까웠다. 하은은 숨을 들이마셨다. 공포가 밀려오려 했지만, 그녀는 의식적으로 그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겁먹으면 배달 점수 깎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단팥죽 용기를 꺼냈다.

"네, 고객님. 아주 뜨겁게 준비했습니다. 설탕도 듬뿍 넣었고요. 근데 고객님, 여기 바닥이 너무 흐물거리는데, 이거 좀 고정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서 있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하은의 능청스러운 농담이 울려 퍼지자, 기괴하게 뒤틀려 있던 공간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녀는 그 찰나의 틈을 타서 단팥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배달 완료: 서촌 골목]

[영혼 수확 점수: +120]

[시스템 에너지 수치: 85%로 상승]

배달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치 거대한 댐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휘감고 있던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뒤틀렸던 벽면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공중에 떠 있던 가구들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하은은 안도하기보다 기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배달이 완료되자마자, 그곳에 존재하던 그림자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배달이 완료되어 영혼이 안식을 찾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그 영혼의 흔적을 '수확'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공인가요?"

민준이 다가와 그녀의 옆에 섰다. 그는 수치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달은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은 씨, 방금 보셨나요? 배달이 끝나는 순간 반응한 에너지의 흐름이요."

민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영혼이 배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잔류 에너지가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에너지를 강제로 추출해낸 것 같은 데이터가 잡히네요."

하은은 민준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배달 지점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평범한 골목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혼이 배달을 받았으면 그냥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변했죠. 우리가 배달을 할 때마다, 시스템은 영혼의 배고픔을 달래는 대신 그들의 에너지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달원이 아니라,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매개체로 쓰이고 있다는 뜻이죠."

하은은 입을 다물었다. 민준의 말은 방금 전 용산 방공호에서 느꼈던 직감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다음 배달 요청이 이미 떠 있었다.

[배달 요청: 강남구, 고층 빌딩 옥상, 차가운 커피(얼음 많이)]

이번에는 '영적 부패' 경고는 없었지만, 배달 지점이 평소보다 훨씬 높은 곳이었다. 하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헬멧을 다시 고쳐 썼다.

"에너지니 뭐니 복잡한 건 모르겠고, 일단 커피나 빨리 배달하고 오죠. 제 배꼽시계는 지금 영적 부패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태거든요."

그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 하단에 표시되는 '시스템 에너지 수치'에 머물러 있었다. 배달이 반복될수록 그 수치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하은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밤의 도시는 여전히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지만, 그녀는 그 불빛 뒤에 숨겨진 거대한 기계 장치의 소음을 듣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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