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전용 배달원의 일상
하은은 헬멧을 벗어 품에 안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비릿한 쇠 냄새가 코끝에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배달 완료]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떠 있었고, 그 아래로 '영혼 수확 점수'라는 기묘한 항목에 숫자가 찍히는 것이 보였다. 하은은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수고를 증명하는 성적표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아, 진짜... 배고파 죽겠네. 귀신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죽겠어."
그녀는 투덜거리며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화면에는 다음 배달 요청이 바로 떴다. [배달 요청: 종로구 삼청동, 골목 안쪽 폐가, 차가운 메밀국수 1그릇(얼음 많이)]. 이번에는 배달 지연 시간이 길어질 경우 '영적 부패' 수치가 위험 수준에 도달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하은은 익숙하게 가방을 챙겼다. 그녀에게 이 일은 이제 생계형 알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일반적인 배달원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가끔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고객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삼청동 폐가라니, 이번 손님은 좀 고집불통이겠는데?"
그녀는 헬멧을 다시 눌러썼다. 전동 헬멧의 바이저가 내려가며 시야가 좁아졌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도심의 풍경은 지극히 평온했다. 하지만 하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가로등 밑에 웅크린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훔쳐보는 그림자들, 혹은 전신주 위에 매달려 낮게 웅성거리는 흐릿한 형체들.
그녀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들은 고객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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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골목은 깊고 좁았다. 가로등이 하나둘 꺼진 골목 끝에는 담쟁이덩굴이 뒤엉킨 폐가가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하은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배달 가방을 짊어진 채 내렸다. 이곳의 공기는 밀도가 달랐다.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무겁고 끈적이는 느낌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여어, 누구 없소?"
하은이 짐짓 큰 소리로 외쳤다.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건물 벽면이 찌르르하며 비틀리는 소리였다. 그녀는 배달 앱을 켰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영적 반응'이 감지되는 지점이 화면 위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폐가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썩은 나무 냄새와 함께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이 피부를 찔렀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가구들은 마치 누군가가 방금까지 앉아 있었던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방 한구석의 장판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메밀... 국수... 너무... 차갑게..."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천장에서 쏟아졌다. 하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가방에서 국수 용기를 꺼냈다. 천장에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에 가까운 남자의 형체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바닥을 훑고 있었고,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은 구멍만이 뚫려 있었다.
"네, 고객님. 아주 차갑게 준비했습니다. 얼음도 듬뿍 넣었고요. 근데 고객님, 여기 바닥에 꼬인 머리카락 좀 치워주실래요? 청소하기 너무 힘들거든요."
하은의 넉살 좋은 말투에 천장에 매달려 있던 존재의 몸이 움찔하며 흔들렸다. 공포에 질린 듯한 반응이었지만, 하은은 그저 그가 조금 예민한 고객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국수 용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기분 나쁜 냉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배달 완료. 이제 좀 편히 쉬세요."
하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몇 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손님들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 데는 도사였다. 어떤 영혼은 배달이 늦어지면 화를 내며 공간을 뒤틀어버렸고, 어떤 영혼은 배달원이 올 때까지 너무 슬피 울어서 배달원을 울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손님은 유독 조용했다. 배달을 받은 직후, 하은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했다.
[배달 완료: 삼청동 폐가]
[영혼 수확 점수: +15]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점수를 확인하며 다음 주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면 하단에 새로 생성된 작은 알림창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붙들었다.
[알림: 시스템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수집되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 에너지 수치: 78%]
'에너지 수치?'
하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배달 점수와는 별개로 표시되는 이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녀는 그저 시스템이 배달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새벽의 도시는 여전히 고요했고, 그녀의 등 뒤로 폐가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은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배달을 완료할 때마다, 도시의 어디에선가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더욱 거세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다음 배달지가 어디든, 그녀는 그곳까지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안전하게 배달을 완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