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솜이의 눈물
민호는 숨을 죽인 채 솜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가게 안을 가득 채웠던 매콤하고 달콤한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습기를 머금은 듯 무겁고 쓸쓸한 공기가 발목을 붙잡았다. 솜의 울음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허기가 서려 있는 듯했다.
"솜아, 대체 왜 그래? 빨간 뿔 대장님이 무섭게 해서 그래?"
민호가 조심스럽게 묻자, 솜은 움찔하며 고개를 더 깊숙이 파묻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눈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다가, 겨우 고개를 들어 민호를 바라보았다. 오렌지색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젖어 있었고, 그 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는... 너는 모르잖아. 우리가 왜 이렇게 숨겨야만 하는지."
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마치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장님은 우리가 이 맛있는 것들을 숨겨두어야만 마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셔. 하지만 사실은... 사실은 우리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 거야."
민호는 눈을 크게 떴다. 배가 고프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떡볶이를 먹고 몸이 붕 떠오를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얻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말이야, 맛있는 걸 먹으면 마법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그 맛을 '기억'할 때만 아주 잠깐 힘을 얻을 수 있어. 우리가 진짜로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즐겁게 먹어버리면, 그 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법의 기운도 같이 흩어져 버리거든. 그래서 대장님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 대신, 그 맛의 정수만을 아주 조금씩 훔쳐서 창고에 저장해두라고 명령하시는 거야."
솜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우리는 늘 배가 고파.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아주 작은 조각만을 마법의 재료로 써야 하니까. 배는 고픈데, 마음은 늘 허전해. 마치 세상의 모든 맛을 다 알고 있지만, 정작 한 번도 제대로 맛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야."
민호는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정들에게 맛있는 음식은 축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깎아내야 하는 가혹한 자원이었다. 그들은 맛있는 기억을 양분 삼아 살아가지만, 정작 그 맛을 온전히 누릴 권리는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희가 숨기고 있는 그 재료들도, 사실은 배고픔을 참기 위한 거였어?"
"응. 우리가 숨기는 것들은 아주 귀한 것들이야. 하지만 말이야, 민호야. 우리가 아무리 귀한 걸 숨겨둬도, 결국은 허기가 가시지 않아. 달콤한 설탕 가절을 아무리 모아도, 입안이 텅 빈 것 같은 이 기분은 채워지지 않거든."
솜은 다시 울먹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요정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충만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누리는 순간 그들의 존재 기반인 마법이 약해진다는 역설이 그들을 옥죄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는 왜 맛있는 걸 먹으면 사라지는 걸까? 왜 즐거움은 마법의 적이 되어야 하는 걸까?"
솜의 질문은 민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어 놓았다. 민호는 자신이 먹었던 그 환상적인 떡볶이의 맛을 떠올렸다. 중력을 거스르고 몸을 붕 뜨게 만들었던 그 강렬한 에너지는, 사실 요정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쥐어짜 낸 슬픈 정수였던 것이다.
민호는 주머니 속의 낡은 요리책을 만지작거렸다. 어머니가 남긴 이 책에는 세상의 평범한 레시피가 아닌, 아주 특별한 재료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만약 그 책에 적힌 비밀이, 요정들의 이 슬픈 허기를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어떨까.
"솜아, 너무 울지 마. 내가...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
민호의 말에 솜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눈물로 가득한 눈이었지만,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이 스치듯 지나갔다.
"정말? 너는 정말로... 우리가 마음껏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거야?"
민호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슬픈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창밖의 어스름한 골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요정들이 숨겨둔 은빛 설탕이 빛나고 있을 환풍기 너머의 어둠이 보였다. 그곳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고독한 세계였다.
"음식은 말이야, 숨기려고 할 때보다 같이 나누려고 할 때 더 맛있어지는 법이거든. 너희가 숨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찾아볼게."
민호는 그렇게 다짐하며, 가방 속 요리책의 묵직한 무게를 다시 한번 느꼈다. 솜의 눈물로 젖은 얼굴을 보며, 민호는 이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이 신비로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작은 영웅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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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가게를 나서며 다시 한번 환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김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보았던 그 강렬한 향기가 이제는 어딘지 모르게 애처롭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민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요정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 혹은 그들의 마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특별한 맛은 무엇일까.
민호는 가방 속 요리책의 첫 페이지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말했던 '특별한 재료'와 '비밀스러운 레시피'가 바로 그 해답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민호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더 힘차게 땅을 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