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빨간 뿔의 경고
환풍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음성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얼음장 같은 한기를 품은 채, 공기 중의 온도를 순식간에 떨어뜨리는 위압적인 울림이었다. 민호는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에 몸을 밀어 넣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혹시 요정들이 이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겁이 날 정도였다.
그때였다. 환풍기의 붉은 김이 소용돌이치며 갑자기 잦아들더니, 어둠 속에서 형형한 빛이 번뜩였다. 그것은 솜의 은빛 눈동자처럼 부드러운 빛이 아니었다. 마치 타오르는 불씨를 담아낸 듯, 아주 강렬하고도 위협적인 붉은 빛이었다.
"거기, 숨어 있는 그림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명령조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발끝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빛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마침내 환풍기 구멍을 통해 작은 존재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는 솜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 그리고 머리 위로 솟아오른 뾰족한 빨간 뿔은 마치 불길이 치솟는 듯한 형상이었다. 무엇보다 민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눈이었다. 짙은 붉은색이 감도는 그 눈동자는 마치 분노로 일렁이는 용암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 저, 저기..."
민호는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빨간 뿔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요리책이 가늘게 떨렸다.
"인간이 아니냐. 감히 우리의 성역에 발을 들이다니."
빨간 뿔이 민호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린 저음이었지만, 그 안에는 거역할 수 없는 권위가 담겨 있었다. 솜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왔다.
"대장님, 진정하세요! 이 아이는 그냥... 그냥 우연히 들어온 것 같아요. 해치지 않을 거예요!"
"우연이라니, 솜아! 이 아이는 우리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무엇을 나누려 하는지 목격했다!"
빨간 뿔의 날카로운 지적이 민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민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은빛 설탕을 숨기는 장면을 들킨 것이 분명했다.
"너희가... 맛있는 걸 숨기고 있는 걸 봤어요. 왜 그렇게 소중하게 숨기는 건가요? 같이 먹으면 더 즐거울 텐데..."
민호의 용기 있는 물음에 빨간 뿔의 눈동자가 더욱 붉게 일렁였다. 그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민호를 내려다보았다.
"즐거움?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그 천박한 즐거움이 우리를 망친다. 너희가 이 맛있는 기억들을 탐욕스럽게 삼켜버릴수록, 우리의 마법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약해진다. 너희가 배부르게 먹고 웃으며 떠드는 순간, 우리의 힘은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린단 말이다!"
그의 말은 차갑고도 단호했다. 빨간 뿔에게 있어 맛있는 음식은 나누어야 할 축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할 한정된 자원이었다.
"그래서 너희는 독차지하려는 건가요? 이 맛있는 떡볶이를?"
"독차가 아니라 수호하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우리의 마법을 지키는 것이지. 너는 이제 이곳의 비밀을 알았으니,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빨간 뿔이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민호의 발밑에서 붉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그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민호를 가게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안 돼요, 대장님! 이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에요. 그냥 호기심이 많을 뿐이에요!"
솜이 울먹이며 말했지만, 빨간 뿔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민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다음에 다시 이 근처를 서성인다면, 그때는 단순한 경고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는 순간 우리의 세계는 무너진다. 그러니 당장 사라져라!"
민호는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압도되어, 도망치듯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에 닿았지만, 가슴 속의 두근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붉은 빛을 내뿜던 분식점의 불빛이 마치 거대한 괴물의 눈처럼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골목 끝에 멈춰 선 민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방금 본 빨간 뿔의 그 붉은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화가 난 눈이 아니라,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지독하게 외로운 눈이었다.
민호는 가방 속의 낡은 요리책을 꼭 쥐었다. 이 기묘한 분식점과 그 속에 숨겨진 요정들의 세계. 그리고 자신을 밀어내던 그 서슬 퍼런 경고.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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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민호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어제의 일이 꿈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그 신비로운 맛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갈망이 교차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 골목 끝에서 익숙한 고추장 향기가 다시금 코끝을 간지럽혔다.
민호는 어제처럼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게 안은 평소보다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환풍기에서 나오는 김도 힘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때, 주방 구석에서 아주 작은 신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흑... 흐으윽..."
민호는 발소리를 죽이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솜이 무릎을 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솜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민호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솜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의 오렌지색 눈동자는 눈물로 가득 차 젖어 있었고, 뺨을 타고 흐른 눈물 자국이 은빛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