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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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파도 · 약 3분

폭풍은 잦아들었으나, 남은 것은 씻겨 내려간 흔적과 처참한 잔해뿐이었다. 젖은 바닥을 때리던 빗줄기는 이제 실가닥 같은 미세한 안개로 변해 도시의 상흔을 덮고 있었다. 준은 비틀거리며 해안가 절벽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상처 입은 어깨를 헤집었지만, 그는 통증조차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가슴 속, 평생을 괴롭히던 흉터가 이제는 더 이상 쓰라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를 옥죄던 가짜 죄책감의 껍질이 벗겨져 나간 자리에 남은, 서늘하고도 명징한 낙인이었다. 동료의 죽음도, 자신의 무능함도, 그 모든 비극은 해룡파가 설계한 정교한 감옥의 창살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를 지탱하던 고통의 무게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이제 그는 누군가의 잘못을 대신 짊어진 죄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하고 다시 세운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 ✦ ✦

멀리 해룡파의 거점이었던 부두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고 있었다. 명훈의 위선적인 제국은 장부라는 불씨에 의해 재가 되어 흩어질 것이었다. 안개 너머에서 자신을 쫓던 위협적인 그림자들은 이제 실체가 없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태석의 광기 어린 눈빛도, 명훈의 치밀한 계산도, 이 거대한 자연의 침묵 앞에서는 무력한 소음에 불과했다.

준은 주머니에서 멈춰버린 회중시계를 꺼냈다. 그는 시계의 태엽을 다시 감아보려 했으나, 이내 손을 멈추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이제 무의미했다. 멈춰버린 것은 시계가 아니라, 그가 붙잡고 있던 가짜 과거였다. 그는 시계를 바닷속 깊은 곳으로 던졌다. 수면 위로 작은 파문이 일더니, 이내 검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야, 끝났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메말라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뤄낸 자의 환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고요한 마침표였다.

✦ ✦ ✦

안개가 자욱한 카페의 창가 너머로, 은수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거리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녀가 건넨 짧은 글귀를 따라갔는지, 혹은 그 글귀가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가 머물던 자리에 남은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조용히 찻잔을 움켜쥐었다.

부두 끝, 잿빛 파도는 여전히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는 모든 것을 삼키고, 다시 모든 것을 비워낸다. 준은 멀어지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기억의 파편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육신 위로 내려앉았다. 빛도, 어둠도 사라진 안개의 세계에서 그는 비로소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마주한 것은 절망이 아닌, 아무것도 남지 않은 투명한 공허였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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