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제2장: 쫓기는 자의 숨결

잿빛의 파도 · 약 5분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빗소리는 컨테이너의 철판을 끊임없이 두드리며 불길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준은 탁자 위에 놓인 낡은 회중시계를 다시 집어 들었다. 태엽을 감아보아도 바늘은 미동조차 없었다. 멈춰버린 시간은 죽은 자들의 침묵과 닮아 있었다. 그는 이 시계가 멈춘 그날, 자신의 삶 역시 함께 멈춰버렸음을 실감했다. 가슴의 흉터가 비릿한 통증을 내뿜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고 있다는, 생존을 건 본능적인 신호였다.

그는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장부의 무게는 물리적인 부피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이 종이 뭉치가 도시의 밑바닥을 뒤흔들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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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세상은 회색빛 수의를 입은 듯 음산했다. 준은 거처를 떠나기 전, 짧은 휴식을 위해 항구 근처의 작은 카페를 찾았다. 서은수가 운영하는 그곳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듯 고요한 섬과 같았다. 따뜻한 커피 향이 비릿한 바다 냄새를 잠시 지워주었다.

"오늘따라 안색이 안 좋네요, 준 씨."

은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눈은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준이 가진 어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묘한 깊이가 있었다. 준은 대답 대신 식어가는 커피를 한 모당 삼켰다. 그녀의 다정한 시선은 때로 그에게 구원이 되기도 했으나, 지금처럼 벼랑 끝에 선 순간에는 오히려 날카로운 가시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말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준이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그녀가 테이블 구석에 작은 봉투 하나를 놓아두고 떠났다. 나중에 읽어보라는 무언의 배려였다. 준은 봉투를 손에 쥐었다. 은수가 건네는 짧은 안부나 일상의 기록들. 그것이 그가 이 지옥 같은 도시에서 유일하게 붙잡고 있는 정서적 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그 따스함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카페를 나서는 준의 뒤로 차가운 빗줄기가 다시 쏟아졌다. 그는 봉투를 외투 안쪽 깊숙이 숨겼다. 은수가 쓴 짧은 글귀가 그가 가진 불안을 잠시 억누를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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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골목을 돌아 큰길로 나서는 순간, 준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안개를 헤치고 미끄러지듯 나타나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차량의 엔진 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쫓기고 있다.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심장 박동이 귀밑까지 차올랐다. 골목을 꺾어 들어간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타이어 마찰음이 그의 추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해룡파의 행동대장, 백태석. 그 이름만으로도 도시의 하층민들은 숨을 죽인다. 그가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찾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짓밟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태석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숨통을 끊는 일조차 망설이지 않는 잔혹한 사냥꾼이었다.

준은 인적이 드문 폐창고 구역으로 몸을 숨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기댔다. 차가운 벽면의 냉기가 젖은 옷을 뚫고 들어왔다. 추격자들의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길게 늘어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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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서는 판을 바꿔야 했다. 장부를 들고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이 짐승 같은 자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 준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적의 심장부로 직접 들어가, 그들이 감히 거절할 수 없는 패를 던지는 것.

그는 해룡파의 실세, 한명훈을 떠올렸다. 겉으로는 인자한 사업가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의 모든 돈줄을 쥐고 흔드는 냉혈한. 명훈은 이 장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며, 동시에 이 장부가 가져올 파국을 가장 두려워할 인물이었다.

'그를 이용해야 한다.'

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조직의 실세에게 직접 접근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추격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는 장부를 가방 깊숙이 밀어 넣고, 비에 젖은 얼굴을 쓸어 올렸다.

안개 너머에서 태석의 차량이 내뿜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뜩였다. 빛은 마치 짐승의 눈동자처럼 번뜩이며 준의 퇴로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숨는 대신, 스스로를 미끼로 던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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