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제5장: 잿빛의 사투

잿빛의 파도 · 약 5분

하늘이 찢겨 나간 듯 거친 폭풍우가 청해시의 부두를 때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이제 안개를 뚫고 시야를 마비시키는 날카로운 창끝이 되어 지면을 두드렸다. 준은 약속된 폐창고의 거대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녹슨 철문 너머로 검은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안개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품 안의 장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태워버릴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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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육중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명훈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은 짐승의 눈을 닮은 백태석이었다. 그는 빗물에 젖은 가죽 재킷을 걸친 채, 살기 어린 눈빛으로 준을 응시했다. 태석의 뒤로 해룡파의 무장한 사내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섰지만, 그는 손에 쥔 단검 하나만을 만지작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네가 감히 판을 흔들 줄 알았나."

태석의 목소리는 천둥소리에 섞여 낮게 깔렸다. 그는 준이 장부를 미끼로 던질 것을 이미 예견한 듯, 조롱 섞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장부를 넘기고 싶다면, 무릎부터 꿇는 게 예의지. 그 잘난 자존심은 이 진흙탕에 버리고 왔어야지."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머니 속에서 멈춰버린 회중시계를 꺼내 손바닥에 꽉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멈춰버린 시간, 조작된 과거, 그리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파괴의 순간. 시계의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준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시계를 다시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고,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무릎을 꿇으러 온 게 아니다."

준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서늘하게 날아갔다.

"너희의 가짜 세계를 무너뜨리러 왔을 뿐이다."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태석이 먼저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빗물로 미끄러운 바닥 위로 그의 움직임은 번개처럼 날카로웠다. 단검이 공기를 가르며 준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준은 몸을 비틀어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쇠붙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창고 안을 날카롭게 울렸다.

격렬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창고 안은 들이치는 빗줄기와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안개로 가득 찼다. 태석의 공격은 잔혹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는 감정 없이 급소만을 노렸다. 준은 그 공격을 받아내며 동시에 반격을 꾀했다. 뼈와 살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거친 숨소리가 폭풍우의 소음과 뒤섞여 기괴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준의 옆구리에 태석의 단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통증이 그를 더욱 선명하게 깨어 있게 했다. 조작된 진실 속에서 길을 잃었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자신의 생명을 깎아 먹으며 태석을 압박했다.

"죽어! 죽어버려!"

태석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명령에 충실한 사냥꾼이 통제권을 벗어난 사냥감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본능적인 분노였다. 준은 태석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근접한 거리에서 태석의 단검이 준의 어깨를 깊숙이 찔렀다. 비릿한 혈향이 빗물과 섞여 코끝을 찔렀다.

그 순간, 준은 태석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의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다. 뒤엉킨 두 신체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를 뒹굴었다. 준은 태석의 목을 조르며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태석의 눈에 처음으로 서린 것은 공포였다.

"이게... 네가 말한... 파괴냐?"

태석이 밭은 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준은 대답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그의 가슴팍으로 밀어 넣었다. 차가운 금속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은 지독히도 선명했다. 태석의 몸이 경련하며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승리의 예감이 찾아왔으나, 준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태석을 쓰러뜨린 준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피로 물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창고 밖의 폭풍은 더욱 거세져, 마치 이 모든 참극을 비웃듯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장부가 든 가방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이제 이 장부는 그에게 구원이 아닌, 무거운 유해와도 같았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지탱하며, 피가 섞인 빗물을 들이켰다. 승리했으나, 그가 얻은 것은 오직 파괴된 자아와 차갑게 식어가는 육신의 통증뿐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마치 거대한 무덤의 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준은 피칠갑이 된 채, 무너져가는 창고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빗줄기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오직 잿빛의 어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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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더욱 짙게 내려앉아 모든 형체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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