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제6장: 고통의 공명

침묵의 유산: 붉은 비가 내리는 날 · 약 7분

성채의 박동이 심장 소리처럼 귓가를 때리는 가운데, 아크의 명령은 예고 없이 떨어졌다. 정기 훈련을 가장한 실전 투입이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성채 인근에 생성된 소규모 균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붉은 안개가 유독 짙게 깔려 있었고, 그 안개는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부를 눅눅하고 비릿하게 적셨다.

"모두 전투 태세를 유지하라! 괴수의 출현이 임박했다!"

차이안의 호령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는 이미 검을 뽑아 든 채, 가장 앞선 선두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결은 그 뒤를 따르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문양은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박동하며,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려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균열이 벌어지며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틈을 비집고 나온 괴수들은 형체가 불분명했다. 마치 짓이겨진 육신들이 뒤엉킨 듯한 기괴한 형상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차이안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푸른 불꽃이 튀었고, 괴수들의 비명은 날카로운 금속음처럼 고막을 긁었다.

"강한결! 멍하니 서 있지 마라! 뒤를 봐!"

차이안의 외침과 동시에 한결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괴수의 발톱이 한결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육체적인 통증은 미미했다. 진짜 문제는 그 순간 터져 나온 '파동'이었다.

"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괴수의 것이 아니었다. 한결의 머릿속을 난도질한 것은, 방금 전 자신의 어깨를 할퀴어 지나간 괴수가 품고 있던, 혹은 그 괴수를 조종하는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온 수만 갈래의 고통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 자식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절망, 그리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어 하는 자의 뒤틀린 자학이 뒤섞인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한결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시야가 붉게 점멸했다. 타인의 고통이 신경계를 타고 들어와 뇌수를 직접적으로 타격했다. 눈을 뜨려고 해도 눈꺼풀 너머로 보이는 것은 세상의 풍경이 아니라, 고통받는 영혼들의 형상이었다.

"하아, 하아... 제발... 그만..."

한결은 신음하며 땅을 긁었다. 가슴의 문양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그 모든 고의 흐름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통을 빨아들일수록, 그 끝에 남는 것은 정화된 평온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고 진득한, 구역질 나는 어둠이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한결은 피와 흙이 뒤섞인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주변은 이미 전투의 흔적으로 처참했다. 차이안은 괴수들의 시체 사이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고, 다른 헌터들도 지친 기색으로 무기를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한결은 그들이 내뿜는 안도감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감각은 여전히 세계의 밑바닥을 헤집고 있었다. 그는 보았다. 괴수들의 공격이 단순한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그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발톱과 파괴적인 몸짓 뒤에는, 인간들이 내뱉은 추악한 욕망의 파편들이 깃들어 있었다. 타인을 지배하고 싶다는 오만, 힘을 독점하려는 탐욕, 그리고 파멸을 통해서라도 존재를 증명하려는 광기. 그 모든 것이 공허의 파동을 타고 괴수의 형상을 빌려 현실로 투영되고 있었다.

"이건... 괴물이 아니야."

한결이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만든... 괴물이다."

고통의 근원은 게이트 너머의 심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정신적 오염이었다. 사람들이 게이트의 에너지를 탐하고, 힘을 갈구하며 내뱉은 뒤틀린 의지들이 공허와 결합하여 이 재앙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이 한결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때, 차이안이 다가와 한결의 어깨를 짚었다.

"괜찮나? 갑자기 정신을 놓길래 깜짝 놀랐다."

차이안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한결의 눈에는 그의 손길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차이안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그가 숨기고 있는 두려움을 고스란히 전달해왔기 때문이었다.

"차이안 씨... 당신은 정말로 이 힘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까?"

한결의 질문에 차이안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는 대답 대신 한결을 부축해 일으켰다.

"믿고 싶으니까 믿는 거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차이안은 다시금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결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말이다.

✦ ✦ ✦

전투가 끝나고 복귀하는 길, 아크의 의료 센터 근처에서 한결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크의 관리들이 부상당한 헌터들을 수습하며, 그들에게 정체불명의 푸른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투여하고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한결이 멈춰 서서 묻자, 관리 중 한 명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훑었다.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고 파동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보조제입니다. 헌터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처치죠."

관리의 말은 매끄러웠지만, 한결은 그 주사기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헌터들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저항력이 높아지는 안정감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자아가 잠식당하는 듯한 기괴한 고양감이었다.

한결은 문득 차이안이 보여주었던 기밀 문서를 떠올렸다. '포획'이라는 단어.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물 투여. 두 사건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크는 단순히 헌터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약물을 통해 그들의 정신을 특정 파동에 순응하도록 개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슴의 문양이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고통이 아니라, 경고의 신호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 세계가 말하는 '진화'는, 사실 인간이 스스로를 버리고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한결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결 씨, 아직 안 갔군요."

서윤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정갈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결이 보고 있던 약물 투여 현장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서윤 씨...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나요?"

한결의 물음에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품 안에서 그 낡은 일기장을 꺼내 손에 꼭 쥐었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일기장의 해진 모서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게 될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에요."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그 순간, 하늘 위로 다시금 검붉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붉은 비가 내리기 직전의,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목차

P 프롤로그핏빛 비와 함께 찾아온 종말의 전조, 그 고통의 파동 속에서. 1 제1장: 붉은 비의 서곡붉은 비가 쏟아지는 종말의 아수라장 속에서 기이한 문양이 깨어난다. 2 제2장: 아크의 부름기이한 문양과 함께 깨어난 한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3 제3장: 공허의 파동몸 안의 문양과 공허의 파동이 불러온 기묘한 전조. 4 제4장: 성채의 그림자거대한 성채의 기괴한 박동과 숨겨진 진실. 5 제5장: 균열된 신뢰성채의 기이한 박동 뒤에 숨겨진 아크의 서늘한 진실. 6 제6장: 고통의 공명괴수의 고통 속에서 마주한 추악한 진실과 거대한 음모. 7 제7장: 붉은 비의 진실붉은 비가 쏟아지는 세상 속, 숨겨진 음모와 마주하다. 8 제8장: 무너지는 질서무너져가는 질서 속에서 성채의 심장부를 향한 위험한 여정이 시작된다. 9 제9장: 심장부로의 진격성채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인류의 잔혹한 진실. 10 제10장: 신의 심판성채의 심장부, 거대한 구체의 폭주를 막기 위한 한결의 사투. 11 제11장: 붉은 폭풍의 절정성채의 심장을 향한 한결의 처절한 돌진과 거대한 역류의 시작. 12 제12장: 세계의 재정의거대한 성채를 무너뜨리기 위한 한결의 처절한 역류. 13 제13장: 새로운 아침폭발의 잔해 속에서 깨어난 한결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E 에필로그재앙의 잔해 위로 피어난 평범하고도 위대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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