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제1장: 붉은 비의 서곡

침묵의 유산: 붉은 비가 내리는 날 · 약 5분

비릿한 철분 향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이 되어 돌아왔다. 한결은 구역질을 참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붉은 빗줄기가 지면에 닿아 튀어 오를 때마다, 그 파편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의 피부를 파고드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세계의 잔해였다.

"아악! 살려줘! 제발!"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은 이제 환청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파동이 되어 한결의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를 흔들었다. 비명은 고통의 형상이었다. 누군가의 다리가 으스러지는 감각,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서늘한 공포, 노인의 심장이 멈추며 느끼는 허망한 절망까지. 그 모든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한결은 자신의 신경계가 수만 갈래로 찢겨 나가는 환각에 시달리며 고개를 처박았다.

하늘을 보았다.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 보이는 것은 우주의 성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눈동자처럼 꿈틀거리는 심연이었다. 그 눈동자가 깜빡일 때마다 세상은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다시 붉은 비가 되어 쏟아졌다.

"이게... 대체 무슨..."

말문이 막혔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결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빗물에 젖은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가슴 언저리에서 타는 듯한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심장 근처에서 시작된 열기는 혈관을 타고 사지로 퍼져 나갔다.

"으윽...!"

그것은 고통과는 결이 다른, 무언가 거대한 힘이 몸 안을 헤집는 감각이었다. 한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체를 움켜쥐었다. 젖은 셔츠 너머로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옷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왼쪽 가슴, 심장과 맞닿은 피부 위로 기묘한 문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핏줄이 뒤엉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문양 같기도 했고, 고대 언어로 쓰인 저주받은 주문 같기도 했다. 붉은 비가 내리는 하늘의 빛깔을 닮은 그 문양은, 한결의 맥박에 맞춰 기괴하게 박동하며 스스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있었다.

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굉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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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치는 거리의 끝, 거대한 균열이 벌어진 지점으로부터 무언가 튀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재앙에 가까웠다. 칠흑 같은 외피를 두른 괴수들이 붉은 안개를 헤치며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도망쳐! 빨리!"

사람들은 무작정 달렸다. 하지만 그들이 달리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붉은 비는 길을 찾는 이들의 시야를 가렸고,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허의 파동은 도망치는 이들의 정신을 먼저 무너뜨렸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한결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일더니, 달려드는 괴수의 머리를 단숨에 태워버렸다.

"이 괴물 놈들! 다 쓸어버리겠어!"

남자의 외침은 공포에 질린 군중의 비명 사이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는 괴수를 베어 넘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선혈이 낭자했지만, 그것은 괴수의 피였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희망을 찾는 듯했지만, 한결의 눈에는 보였다. 그가 휘두르는 힘 또한 결코 순수한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힘을 쓸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비틀리고, 사람들의 정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각성'이라 불리는 기적이었으나, 동시에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이었다.

한결은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하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 위의 문양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와중에, 그 문양은 마치 그 모든 고통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아... 안 돼..."

한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 안으로 침투하는 거대한 힘의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타인의 비명보다 더 날카롭고, 붉은 비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 그는 보았다. 하늘의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며, 그 틈 사이로 거대한 성채와 같은 구조물이 지구의 지표면을 향해 하강하는 모습을.

세상의 종말은 그렇게, 가장 화려하고도 잔혹한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목차

P 프롤로그핏빛 비와 함께 찾아온 종말의 전조, 그 고통의 파동 속에서. 1 제1장: 붉은 비의 서곡붉은 비가 쏟아지는 종말의 아수라장 속에서 기이한 문양이 깨어난다. 2 제2장: 아크의 부름기이한 문양과 함께 깨어난 한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3 제3장: 공허의 파동몸 안의 문양과 공허의 파동이 불러온 기묘한 전조. 4 제4장: 성채의 그림자거대한 성채의 기괴한 박동과 숨겨진 진실. 5 제5장: 균열된 신뢰성채의 기이한 박동 뒤에 숨겨진 아크의 서늘한 진실. 6 제6장: 고통의 공명괴수의 고통 속에서 마주한 추악한 진실과 거대한 음모. 7 제7장: 붉은 비의 진실붉은 비가 쏟아지는 세상 속, 숨겨진 음모와 마주하다. 8 제8장: 무너지는 질서무너져가는 질서 속에서 성채의 심장부를 향한 위험한 여정이 시작된다. 9 제9장: 심장부로의 진격성채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인류의 잔혹한 진실. 10 제10장: 신의 심판성채의 심장부, 거대한 구체의 폭주를 막기 위한 한결의 사투. 11 제11장: 붉은 폭풍의 절정성채의 심장을 향한 한결의 처절한 돌진과 거대한 역류의 시작. 12 제12장: 세계의 재정의거대한 성채를 무너뜨리기 위한 한결의 처절한 역류. 13 제13장: 새로운 아침폭발의 잔해 속에서 깨어난 한결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E 에필로그재앙의 잔해 위로 피어난 평범하고도 위대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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