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제5장: 균열된 신뢰

침묵의 유산: 붉은 비가 내리는 날 · 약 5분

성채의 박동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쿵, 쿵, 쿵. 그것은 대지의 맥박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인위적이었고, 거대한 기계 장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라기에는 너무나 생동감이 넘쳤다. 한결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시야에는 여전히 붉은 안개가 일렁이는 듯했다. 가슴 위의 문양은 밤의 정적 속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며,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의 갈비뼈를 긁어대는 것 같았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그의 감각은 밤이 되면 더욱 예민해졌다. 아크의 의료 센터 너머, 어둠 속에 잠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슬픔과 피로, 그리고 이름 모를 불안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의식을 흔들었다. 그 지독한 소음 속에서 한결은 성채가 내뱉는 규칙적인 박동만을 이정표 삼아 겨우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크의 훈련장 외곽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훈련의 열기라기보다는, 무언가 폭발적인 에너지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잔해 같은 분위기였다. 한결은 훈련을 마치고 숨을 고르며 구석진 그늘로 향했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네, 눈빛이 꽤 예리하군. 단순히 힘을 받아들이는 그릇치고는 말이야."

호탕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넓은 어깨와 탄탄한 체구, 그리고 전장을 누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날 선 기운을 지닌 사내였다. 그의 눈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력을 담고 있었다.

"차이안입니다. S급 헌터라고들 하더군."

그는 한결에게 짧은 눈인사를 건네며 곁에 앉았다. 그의 몸에서는 갓 베어낸 나무처럼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혈기(血氣)가 느껴졌다.

"강한결이라고 했나? 자네가 가진 그 문양, 아크에서는 아주 귀한 보물로 취급하더군.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스스로를 갉아먹는 불꽃처럼 보여."

한결은 차이안의 말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가 말한 '불꽃'은 한결이 느끼는 열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무슨 뜻입니까?"

"의문이 생기지 않나? 저 성채가, 그리고 저 파동이 정말로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지 말이야."

차이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듯 고개를 돌린 뒤, 품 안에서 구겨진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아크의 문장이 찍힌, 극비 문서의 일부였다.

"아크는 게이트의 파동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하지. 하지만 이 기록을 봐라. 그들이 하는 일은 억제가 아니라 '포획'이다."

한결은 침을 삼키며 그가 내민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문서에는 성채의 구조도와 함께,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파동의 수치가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치는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점을 향해 거대하게 증폭되고 있었다.

"성채의 심장부에서 들리는 그 박동... 자네도 느꼈겠지? 그건 생존을 위한 고동이 아니야. 게이트의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끌어모아 응축시키는 거대한 흡입 장치의 소리지."

차이안의 말은 한결이 느꼈던 직감에 확신을 더했다. 성채 지하에서 들려오던 그 기이한 박동은, 무언가를 보호하는 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위장의 꿈틀거림이었다.

"아크는 파동을 이용해 헌터들을 길러내고, 그 힘을 다시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 하고 있어. 백도준이 가진 그 펜던트 역시 그 과정의 일부겠지.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인류를 그들의 거대한 시스템 속 부품으로 만들려 하는 거야."

한เรียน은 전율했다. 자신이 느꼈던 그 뜨거운 문양이, 어쩌면 아크가 설계한 거대한 포획망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자네의 능력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효율적인 '필터'가 될 수 있어. 타인의 고통과 파동을 빨아들이고 정화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 말이야."

차이안의 눈빛이 한결을 꿰뚫었다. 그것은 동정이라기보다는, 같은 진실을 목도한 자의 서늘한 연대감이었다.

"이 문서를 잘 간직해라. 아크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이 성채의 심장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증명해야 할 날이 올 거다."

차이안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호탕한 헌터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며 소란스러운 일상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서늘한 진실은 한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결은 다시 성채를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성채가, 저 박동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가슴의 문양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자의 격렬한 심장 박동이었다.

목차

P 프롤로그핏빛 비와 함께 찾아온 종말의 전조, 그 고통의 파동 속에서. 1 제1장: 붉은 비의 서곡붉은 비가 쏟아지는 종말의 아수라장 속에서 기이한 문양이 깨어난다. 2 제2장: 아크의 부름기이한 문양과 함께 깨어난 한결,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3 제3장: 공허의 파동몸 안의 문양과 공허의 파동이 불러온 기묘한 전조. 4 제4장: 성채의 그림자거대한 성채의 기괴한 박동과 숨겨진 진실. 5 제5장: 균열된 신뢰성채의 기이한 박동 뒤에 숨겨진 아크의 서늘한 진실. 6 제6장: 고통의 공명괴수의 고통 속에서 마주한 추악한 진실과 거대한 음모. 7 제7장: 붉은 비의 진실붉은 비가 쏟아지는 세상 속, 숨겨진 음모와 마주하다. 8 제8장: 무너지는 질서무너져가는 질서 속에서 성채의 심장부를 향한 위험한 여정이 시작된다. 9 제9장: 심장부로의 진격성채의 심장부에서 마주한 인류의 잔혹한 진실. 10 제10장: 신의 심판성채의 심장부, 거대한 구체의 폭주를 막기 위한 한결의 사투. 11 제11장: 붉은 폭풍의 절정성채의 심장을 향한 한결의 처절한 돌진과 거대한 역류의 시작. 12 제12장: 세계의 재정의거대한 성채를 무너뜨리기 위한 한결의 처절한 역류. 13 제13장: 새로운 아침폭발의 잔해 속에서 깨어난 한결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E 에필로그재앙의 잔해 위로 피어난 평범하고도 위대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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