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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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잔해를 줍는 사제 · 약 3분

성소의 잔해는 이제 무너진 돌무더기와 먼지로 가득한 공동에 불과했다. 한때 인간의 기억을 집어삼키며 비대하게 자라났던 유기체적 의지는, 파수꾼의 자아를 연료 삼아 타버린 기록들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그 기묘한 침묵은 포식의 종말이자, 고통의 봉인이었다. 이안이 자아를 깎아내며 지켜낸 것은 단순한 기록의 보존이 아니라, 망자들이 영원히 반복해야 했던 지옥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그가 소멸함으로써 성소의 포식성은 억제되었고, 그가 지워낸 문장들은 비로소 무게를 잃고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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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안은 무너진 성소의 입구에 서서, 타버린 종이 조각들이 흩날리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안을 도구로 삼아 신성한 권력을 쥐려 했으나, 결국 그가 마주한 것은 권력도, 영생도 아닌,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처절한 멸망의 흔적이었다. 그는 이안이 자아를 잃어가는 과정을 방관하며 그를 착취했으나, 이제는 그 무엇도 착취할 수 없는 빈 껍데기만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성소는 사라졌고, 그가 원했던 힘은 파수꾼의 희생과 함께 재가 되어 흩어졌다. 카시안은 차가운 눈으로 그 폐허를 응시하며, 자신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혹은 그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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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는 이안이 마지막까지 움켜쥐었던 문장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을 박제하는 사슬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제가 망자들을 위해 바친 가장 숭고한 배웅의 인사였다. 그녀는 이안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지워냈다는 사실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가 지워낸 문장들이 이제는 바람에 실려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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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나, 성소의 그림자가 걷힌 자리에는 묘한 평온이 깃들었다. 이안은 이제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문장 속에 갇혔고, 그가 지켜낸 이들의 안식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 진실이 되었다. 그는 기록되지 않는 존재가 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그는 이제 이름도, 직업도, 과거도 없는 존재가 되어, 자신이 지켜낸 이들이 다음 생에서 평온하게 눈을 뜨기를 바라며 긴 잠에 들었다.

성소는 사라졌고, 그의 이름은 바람에 흩어져 잊힌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지워낸 문장들은 이제 세상의 일부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기록은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자비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되어 세상의 틈새를 메웠다. 이제 기록할 필요도, 지켜낼 필요도 없는 평온한 밤이 그를 감싸 안았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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