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그림자 속의 추격자
민석의 목소리는 젖은 공기를 가르고 정우의 귓가에 낮게 내려앉았다. 그는 마치 비를 피하러 온 손님처럼 자연스럽게 작업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빗물 냄새가 아닌, 서늘한 압박감이 남았다.
"아직도 이 어둠 속에 있는 거냐."
민석은 젖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며 정우를 응시했다. 정우는 대답 대신 책상 위에 놓인 펜던트를 가렸다. 민석의 시선이 펜던트가 놓였던 자리에 머물렀다가 이내 정우의 창백한 얼굴로 옮겨갔다.
"그 상자, 결국 열어본 모양이구나."
민석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평온해서 오히려 기괴했다. 그는 정우가 겪고 있을 혼란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혹은 그 혼란을 유도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우는 그가 내뱉는 말들이 유물 복원 과정에서 마주하는 부식된 금속처럼 날카롭고 불투명하다고 느꼈다.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정우의 물음에 민석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는 그의 손등이 조명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난번 보았던 그 깊은 흉터. 그것은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어떤 격렬한 저항이나 은폐의 흔적처럼 보였다. 정우는 그 흉터가 마치 일기장의 붉은 낙인과 같은 계열의 것임을 직감했다.
"알고 싶다면, 네가 서 있는 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거다. 하지만 조심해라. 유물은 그 형태를 복원할수록, 원래의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하니까."
민석은 짧은 경고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온기가 아니라,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뿐이었다.
✦ ✦ ✦
민석이 떠난 뒤, 정우는 며칠 동안 작업실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그는 펜던트의 부식된 흔적을 추적하는 대신, 그 펜치로 파헤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쫓기 시작했다. 그는 고미술 시장의 흐름을 추적하며, 최근 고가에 거래된 유물들의 행방을 뒤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기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특정 유물들이 경매를 거쳐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지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자금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물을 매개로 한 정교한 자금 세탁의 흔적이었다.
정우는 이 흐름의 끝에 누군가 거대한 성을 쌓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실마리를 잡기 위해 그는 과거 유물 연구로 이름을 떨쳤던 동료 연구원, 이 교수를 찾아갔다. 이 교수는 고미술 시장의 불법 유통 경로를 추적하던 중 정우에게 은밀한 제보를 약속했던 인물이었다.
"정우 씨, 이 유물들의 이동 경로를 보세요. 이건 단순한 거래가 아닙니다. 마치 거대한 댐이 물을 가두었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처럼, 자금이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경로를 타고 흐르고 있어요."
이 교수의 목소리는 흥분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정우에게 유물의 가치를 조작하는 은밀한 방식이 담긴 자료를 건네려 했다. 그러나 그 만남은 끝을 맺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이 교수는 작업실 근처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단순한 부주의로 인한 사고라고 결론지었으나, 정우는 알고 있었다. 이 교수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 했던 자료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날 이후, 정우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강렬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길모퉁이의 그림자, 뒤를 따르는 검은 차량의 잔상, 그리고 창밖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 그것은 유물을 복원할 때 사용하는 정밀한 도구처럼, 그의 일상을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 ✦ ✦
정우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은신처를 옮겨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어둠의 중심부로 들어가야 했다. 그는 이 교수가 남긴 단서들을 조합하여, 자금 세탁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추적했다. 그 끝에는 미술품 재단이라는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서 회장이 있었다.
정우는 기회를 틈타 서 회장의 개인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방문했다. 화려한 도심 한복판,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은 권력자들의 사교장과도 같았다. 정우는 안내를 받으며 재단의 핵심부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재단 이사장의 집무실이었다. 화려한 유물들이 즐비한 그 방의 가장 깊숙한 곳, 서 회장의 책상 뒤편에는 기괴한 형상의 박제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생명체의 형태를 억지로 뒤틀어 고정해 놓은 듯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게 하는 기괴한 박제였다. 그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채 정우를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 형태는 마치 누군가의 삶을 강제로 멈춰 세운 듯한 잔인함을 품고 있었다.
정우는 그 박제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오한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가진, 파괴하고 박제하는 탐욕의 상징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서 회장이었다. 오만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는 마치 정우의 공포를 즐기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그 박제 말인가요? 제가 가장 아끼는 수집품 중 하나입니다. 살아있는 것을 죽여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박제의 진정한 가치 아니겠습니까?"
서 회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이면에는 서늘한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서 회장의 손은, 마치 방금 전 보았던 그 기괴한 박제처럼 차갑고 단단해 보였다.
정우는 도망치듯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빗줄기가 다시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젖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침투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막 시작된 거대한 소용돌이에 대한 예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제 깨달았다. 유물을 복원하는 일은 파편을 맞추는 작업이지만, 진실을 추적하는 일은 그 파편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자신을 베어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칼날의 끝에는, 이미 박제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거대한 악의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