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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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박제사 · 약 3분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퇴적되는 것이라 믿어왔다. 정우에게 있어 삶이란 매일 조금씩 쌓여가는 먼지이자,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의 층위였다. 그는 그 먼지들을 털어내고 틈새를 메우며, 부서진 것들의 형체를 다시금 붙잡아 두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은 죽은 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 끝난 시간의 형상을 박제하여 영원히 고착시키는 일에 가까웠다.

작업실의 공기는 늘 차갑고 건조했다. 정우는 그 건조함 속에서 비로소 안도를 느꼈다. 습기가 스며들면 유물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인간의 기억 또한 습기를 머금으면 눅눅한 슬픔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축축한 기억들을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를 이 메마른 공간에 유폐했다. 핀셋 끝에 걸리는 미세한 파편들, 현미경 너머로 보이는 정교한 균열들만이 그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세계였다.

하지만 완벽한 통제란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은 환청처럼 과거의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에 섞인 비명, 혹은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 같은 것들. 그럴 때면 정우는 손끝의 떨림을 숨기기 위해 더욱 깊은 침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잊으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씻겨 나가지 않는, 피 냄새 섞인 기억의 잔해들 말이다.

정적을 깨뜨린 것은 낮게 깔린 구두 소리였다. 복도를 지나 문밖에서 멈춘 발소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무거운 물체가 바닥을 끄는 듯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정우는 핀셋을 내려놓았다. 미세한 떨림이 손끝을 타고 올라와 심장 근처에서 멎었다.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무언가 침입하고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존재이기도 했으나, 정우가 쌓아 올린 고요한 성벽을 허무는 거대한 균열의 전조였다.

문틈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잠시 후,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상자가 전달되었다.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이름 모를 배달원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는 상자를 건네며 짧은 목소리로 말했다.

"복원 의뢰하신 물품입니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배달원이 떠난 뒤, 정우는 현관 앞에 놓인 나무 상자를 작업실 안으로 들여놓았다. 상자는 세월의 때가 찌든 듯 거무죽죽한 빛을 띠고 있었고, 모서리마다 눅눅한 습기가 배어 있었다. 마치 오래된 무덤에서 방금 꺼낸 유물처럼, 상자에서는 불길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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