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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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굽는 가마 · 약 3분

새벽의 안개는 여전히 마을의 품을 파고들었으나, 그 안개는 더 이상 이전처럼 끈적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옭아매지 않았다. 윤슬 공방이 있던 자리는 텅 빈 공동이 되어 산의 일부로 돌아갔고, 그곳을 지탱하던 기괴한 가마와 압착 배관들은 검게 타버린 뼈대만이 되어 흩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공방의 향기에 취해 현실을 망각하는 대신, 차가운 현실의 공기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통을 잊는 대신, 고통을 기억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수현은 무너진 잔해 더미 사이에서 지안을 발견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분석 장비를 내려놓았다. 이제 그 장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비극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안은 그곳에 있었다. 육체는 화상으로 짓무르고 생명은 꺼져가는 촛불 같았으나, 그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수현은 깨달았다. 지안은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기억을 제물로 바쳐, 그토록 찾고자 했던 딸의 흔적을 영원히 타지 않는 안식으로 치환했다.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수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것은 지안을 향한 말이었으나,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공방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이상 인위적인 기억의 추출액도, 노인의 광기 어린 신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타버린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아주 희박하고도 순수한 잔향만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체온을 닮은, 혹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을 닮은 냄새였다. 수현은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것은 기억이 삭제된 자리에서 피어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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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목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민서연은 그 안개 속에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공방 지하에 갇혀 있던 그들의 기억은 이제 불길 속에서 흩어진 파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방의 향기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공방이 제공했던 가짜 평온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으나, 동시에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었다.

산자락 끝, 이제는 이름조차 사라진 공방의 터에서 그 순수한 향기는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그것은 기억을 잃은 자들이 나누는 유일한 대화였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자들이 공유하는 마지막 온기였다. 지안은 그 향기 속에서 긴 잠에 들었고, 그가 지워버린 기억의 빈자리는 이제 마을의 안개와 섞여 영원히 흐르는 향기가 되었다.

누구도 그 향기의 정체를 정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유품에서 추출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직면하며 뿜어내는,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생의 잔향이었다. 안개는 오늘도 마을을 감쌌고, 그 속에는 지워진 기억들이 빚어낸 가장 투명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모든 것이 타버린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 가장 순수한 기억의 향기였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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