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타오르는 기억의 향연

기억을 굽는 가마 · 약 7분

지안의 손에 쥐인 유리병이 차가운 습기를 머금은 채 파르르 떨렸다. 그 안에 갇힌 딸의 흔적은 마치 이제 막 숨을 헐떡이는 생명체처럼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노인의 눈동자는 그 모든 비극을 관조하는 초연한 관찰자의 그것이었으나, 지안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혔다.

"안식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다시 품에 안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이를 잃었다는 그 지옥 같은 현실을 잊는 것입니까? 당신은 지금 이 아이를 고통스러운 현실로 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병 속에 갇힌 기억은 이제 고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순수한 향기입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무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닥쳐! 네놈이 무슨 권리로 안식을 논해!"

지안의 포효가 지하 저장소의 낮은 천장을 때렸다. 습한 공기가 진동하며 수천 개의 유리병이 일제히 웅웅거리는 소리를 냈다. 지안은 노인의 가슴팍을 밀쳐내며 병을 가슴에 바짝 끌어당겼다. 분노로 시야가 붉게 물들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절망이었다. 노인이 말하는 '안식'은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망각이었다. 아이를 향기로 박제한다는 것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그 껍데기만 남기는 잔인한 행위였다.

"너는... 너는 신이 아니야. 그저 인간의 슬픔을 자원으로 삼는 기생충일 뿐이지."

지안은 이를 악물며 노인을 노려보았다. 노인은 미동도 없이 그를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 모든 파멸을 예견한 성자처럼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지안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긁어놓았다. 지안은 깨달았다. 노인은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안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안이 스스로를 포기하고, 아이를 이 지옥 같은 '영원' 속에 방치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아니,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안식 따위는 필요 없어. 나는 아이를 원해. 아이가 겪었을 마지막 순간을, 그 아이가 나를 부르던 목소리를 단 한 조각이라도 온전히 되찾고 싶어. 네가 억지로 추출하고 변질시킨 이 추잡한 향기 속에, 내 딸의 진짜 기억이 남아있을 것 같으니... 나는 그걸 찾아야겠어."

지안은 병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유리병의 표면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지안의 시선이 지하 벽면을 가득 채운 배관과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압력에 머물렀다. 수현이 분석했던, 무언가를 대량으로 배출하고 하부로 흘려보내는 구조. 그것은 단순히 향기를 생산하는 공정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기억을 짓이기고, 압착하고, 추출해내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이곳을...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해."

지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노인을 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네가 말하는 안식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타버리는 불길 속에도 있을 것 같군. 기억이 변질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이 기억을 강제로 가두고 뒤섞는 이 모든 장치를 파괴하는 것뿐이다."

노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처음으로 그가 보여준 감정의 동요이었다.

"불은 모든 것을 삼킵니다. 당신의 기억도, 아이의 흔적도, 그리고 이 공방의 모든 예술도 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정말 원하십니까?"

"그래. 나는 재가 되더라도 아이의 진짜 기억을 지키겠다."

지안은 뒤를 돌아 수현을 바라보았다. 수현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지안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분석 장비가 들려 있었다. 지안은 그녀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주저하다가 이내 지안의 결연한 의지에 압도된 듯, 공방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연료 저장소의 위치를 가리켰다.

지안은 노인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너는 인간의 고통을 예술이라 불렀지만, 나는 오늘 그 예술을 파괴하겠다."

지안은 품 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손끝이 떨렸으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그는 지하 저장소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억의 핵심이 모이는 거대한 가마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병이 연결되어 있고,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배관들이 엉켜 있었다.

지안은 라이터의 불꽃을 켰다. 작은 불씨가 공기 중의 습기와 섞여 가녀린 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거대한 파멸의 시작이었다.

"안 돼... 지안 씨, 이러면 안 돼요!"

수현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지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불꽃을 가장 먼저 닿는 가장 핵심적인 배관에 가져다 대었다.

"이건... 당신의 망각이 아니라, 나의 저항입니다."

지안은 불꽃을 던졌다.

✦ ✦ ✦

순식간에 치솟은 불길은 지하의 건조한 공기를 만나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수천 개의 유리병이 열기에 반응하며 비명 같은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챙그랑' 소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그 안에 갇혀 있던 수만 가지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공방은 지옥으로 변했다.

지안은 밀려오는 열기와 연기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눈앞은 시커먼 연기로 가려졌으나 그는 보았다. 불길이 치솟는 그 중심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향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그것은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지독한 열기가 만들어낸 뇌의 착각이었을까.

연기 속에서 어린아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이는 불길 속에서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지안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지안은 그 환영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뜨겁게 달궈진 공기와 타들어 가는 기억의 잔해뿐이었다.

"아...!"

지안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불길은 이제 공방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노인은 그 혼란 속에서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수현은 불길에 휩쓸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지안은 타오르는 향기 속에서 아이의 환영을 보며,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이의 기억인지, 혹은 그 아이를 붙잡고 싶어 했던 자신의 집착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지안은 불길이 닿는 곳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 속에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겠다는 처절한 결심으로 불길의 중심을 향해 몸을 던졌다. 타오르는 향기는 이제 지독하게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공방 전체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지안은 그 향기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진실이 얼마나 잔혹하게 부서져 가고 있는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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