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파괴적 복수

유언의 무게 · 약 6분

서진은 복도를 가로지르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쥐어진 메모리 카드는 이제 단순한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무너진 삶, 짓밟힌 존엄, 그리고 아버지가 죽어가는 동안 써 내려갔던 지옥의 지도였다. 그는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강민호의 낮은 목소리에 집중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당신이 가져오신 자료와 제가 보관해온 기록들을 대조하면, 가문의 자산이 어떤 피의 대가로 세워졌는지 증명할 수 있는 최종적인 명단이 나올 겁니다."

서진은 전화를 끊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이제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가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해체하여 그 속에 갇힌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일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이사회를 소집했다. 이번에는 회의실이 아니라, 가문의 모든 자산이 관리되는 메인 서버실과 전산실이 연결된 거대한 홀이었다. 윤서연과 박 전무, 그리고 가문의 핵심 인물들은 공포와 의심이 뒤섞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진은 단상 위에 올라가 차가운 화면을 켰다.

"오늘 제가 발표할 것은 가문의 자산 목록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가문의 모든 자산을 '사회 환원'으로 전환하는 실행안을 발표하겠습니다."

순간, 장내에는 기괴한 정적이 흘렀다. 윤서연은 실소를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진아, 지금 네가 무슨 망상을 하는 거니? 사회 환원? 그게 이 거대한 제국을 유지해온 자본의 흐름을 어떻게 유지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건 자살행위야."

서진은 그녀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는 '사회 환원용 재단'의 실체와 그동안 비자금 세탁에 활용되었던 자산 목록, 그리고 그 자산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가문의 사형선고입니다. 누나, 당신들이 지키려 했던 건 자산이 아니라, 죄악을 덮어둔 채 유지되는 이 위태로운 성벽이었죠. 하지만 그 성벽의 기초는 타인의 눈물과 피로 다져진 것입니다. 저는 이 자산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울림은 지하의 콘크리트 벽을 타고 전율처럼 퍼져 나갔다. 그는 화면에 띄워진 '사회 환원 명단'을 가리켰다.

"성진동과 신성동 개발 당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 원주민들,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나 '개인 과실'로 치부되었던 노동자들. 저는 이들의 이름을 복원하겠습니다. 가문의 자산은 이제 이들의 생존과 치유를 위한 재원으로 전환될 것이며, 가문의 모든 사업권은 공적 자산으로 귀속될 것입니다."

박 전무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책상을 내리쳤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 모든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면 우리 가문은 하루아침에 파산이야! 네가 무슨 권리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지?"

"권리요? 당신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빼앗은 그 권리들 때문이겠죠."

서진은 차갑게 대꾸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윤서연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들은 법을 도구 삼아 사람을 사냥했고, 나는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척하며 방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저는 변호사로서의 실력을, 그리고 가문의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모두 동원해 이 시스템을 파괴하겠습니다. 가문의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이들이 잃어버린 이름을 세울 것입니다."

윤서연은 이제 분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극도의 공포와 허탈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쌓아 올린 성벽이 단 한 번의 선언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서진은 이제 실행에 옮겼다. 그는 가문의 법무팀과 재무팀을 동원해 자산 동결 및 환원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것은 법적, 행정적으로 가문을 완전히 해체하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가문의 이름이 붙은 모든 건물, 모든 사업부에서 가문의 로고를 떼어내고, 그 자산이 누구의 소유였는지를 세상에 공표했다.

그 과정은 처참했다. 가문의 세력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소송과 압박이 빗발쳤지만 서진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켜온 모든 것—부, 명예, 가문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하나씩 포기해 나갔다. 그는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가문의 성벽을 허물고 있었다.

✦ ✦ ✦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날, 서진은 텅 빈 집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제 이 방에는 아무런 권력도, 화려한 가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자산은 사회로 환원되었고, 가문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약병을 다시 보았다.

아버지는 이 지옥 같은 진다는 혼자 감내하며 죽어갔지만, 이제는 그가 그 짐을 끝까지 짊어지고 그 끝에 도달했다. 그는 분노로 시작했던 이 여정이, 결국은 자신을 옥죄던 가문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파멸이었음을 깨달았다.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화려한 마천루 아래로 뻗어 있는 낡고 습한 골목들. 이제 그곳은 그에게 더 이상 억압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법전이 아닌,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걷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메모리 카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아직 채 다 읽지 못한, 혹은 이제는 읽을 필요가 없어진 수많은 이름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가며 잊고 있었던, 진짜 인간의 이름을.

서진은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는 이제 가문의 후계자 이서진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는,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그는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처럼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증명해야 하는, 가장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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