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윤슬 베이커리의 문이 닫히는 소리는 고요한 골목의 정적을 깨우는 부드러운 마침표였다. 은서는 화덕의 불을 끄고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 속에 서 있었다. 이제 빵집 안에는 수연의 기억이 정제된 달콤한 향기만이 잔잔하게 머물러 있었다. 은서는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화상 자국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그 흉터는 과거에 소중한 이를 잃고 스스로를 지우려 했던 은서 자신에게, 타인의 아픔을 굽는 행위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었음을 알려주는 증표였다.
그녀는 수연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그날의 아이'가 실은 수연의 품 안에서 숨을 멈추었던,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비극의 산증인이었음을, 그리고 그 아이의 실종이 사실은 수연의 처절한 봉인 속에 갇혀버린 영원한 정지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4시 12분의 공백은 죽음이 아니라, 수연이 아이를 품고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유폐시킨 고독한 시간이었다. 은서는 멈춰버린 회중시계의 바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제 죽은 시간이 아니라, 수연과 아이가 서로를 놓지 않는 약속의 시간으로 변해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윤슬 베이커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안개 속에 몸을 묻고 있었다. 은서는 가게 앞 골목으로 흩날리는 밀가루를 느끼며 문을 열었다. 이제 이 공간은 단순히 기억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잊힌 이름들을 불러주고, 찢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빵의 온기로 꿰매는 성소였다. 은서는 수연이 남긴 마지막 문장과 그 너머의 진실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반죽을 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노인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망령에 시달리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은서는 그에게 따뜻하게 구워진 빵을 건넸다. 빵을 한 입 베어 문 노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고통이 승화되어 안식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정화의 표정이었다. 은서는 이제 안다. 기억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를 파괴하는 독이 될 수도, 혹은 우리를 살게 하는 온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은서는 다시 밀가루를 공중에 뿌렸다. 하얀 가루가 춤을 추며 내려앉는 동안, 그녀는 수연의 이름과 그 아이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이름들은 이제 은서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빵의 온기 속에 녹아들어, 매일 아침 누군가의 아픈 가슴을 데워주는 따스한 위로가 되었다. 윤슬 베이커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슬픈 기억을 따스한 온기로 바꾸기 위해, 그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