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도 투명하여, 마치 갓 구워낸 빵의 표면처럼 매끄럽게 피부에 와닿았다. 도심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골목 끝에는,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은밀한 공간이 존재했다. 그곳은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곳이었고, 사람들의 망각이 고이는 웅덩이였다. '윤슬 베이커리'라는 간판은 낡은 나무판 위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으나, 그 앞을 지나는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 묘한 정적에 잠겼다.
은서는 밀가루 반죽을 치대며 창밖의 안개를 응시했다. 손끝에 닿는 반죽의 질감은 단순히 밀과 물의 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슬픔이 응축된 무게였고, 타오르는 화덕의 열기에 의해 증발하는 기억의 잔향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들을 느꼈다. 사람들은 이곳에 자신의 아픔을 가져온다. 지우고 싶은 기억, 혹은 너무 아파 손대기 힘든 과거를 한 덩이의 밀가루나 낡은 물건에 투영해 맡긴다. 은서는 그 파편들을 정제하여 빵 속에 녹여냈고, 사람들은 그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비로소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기억은 때로 빵처럼 부드럽게 부서져야만 온전히 품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녀가 나직이 읊조리는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며 고소한 버터 향과 섞여 들었다. 그러나 오늘, 문턱을 넘어온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그것은 차가운 금속의 냄새와, 누군가 억지로 끊어낸 비명 같은 긴장감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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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낡은 종소리가 정적을 깼다. 문이 열리며 밀려 들어온 것은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멈춰버린 시간의 파편이었다. 은서는 고개를 들어 문가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낡은 회중시계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시계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계의 태엽은 멈춰 있었으나,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지독하게도 무거웠다.
"이것을... 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문장 끝에 매달린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은서는 시계에 닿은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기묘한 진동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의 무게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실종, 혹은 스스로를 지우려 했던 처절한 망각의 의지가 서린, 아주 깊고도 아픈 향기였다. 은서는 직감했다. 이 시계가 품고 있는 기억은, 단순히 구워내어 치유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님을.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린 거대한 공백이었다.
은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시계 바늘 위로 머물렀다. 안개 속에서 시작된 이 기묘한 의뢰는, 이제 막 그녀의 화덕 속으로 밀어 넣어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