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서툰 반죽과 낯선 시선
딸랑, 낡은 문에 달린 작은 종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서윤은 반죽을 치대던 손을 멈추고 문쪽을 응시했다. 들어온 이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나무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한 투박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그는 문가에 서서 잠시 서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눈매는 날카로웠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서윤은 당혹감에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아, 안녕하세요. 저, 이제 이 빵집을 맡게 된 한서윤이라고 합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 해서요."
서윤의 말은 공허했다. 도움이 필요하냐는 물음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어색했다. 청년은 대답 대신 서윤의 앞치마에 묻은 하얀 밀가루와, 주방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밀가루 가루들을 훑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잘못된 공정을 지적하는 검수관처럼 냉정했다.
"도움은 무슨. 그냥 지나가다 불빛이 보여서요."
그는 짧게 내뱉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빵집 앞 작은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바다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서윤은 그가 풍기는 서늘한 기운에 압도되어 다시 조리대로 돌아와 앉았다. 손끝에 남은 반죽의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을의 청년 민준이었다. 서윤은 마을 어귀에서 마주쳤던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를 알고 있었다. 조용히 나무를 깎아 가구를 만드는 사람, 말수가 적지만 손재주는 좋다는 사람.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그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다. 그 벽은 마치 이 마을이 외부인에게 내보이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 같았다.
서윤은 다시 반죽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세게, 아니 더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무언가에 쫓기듯, 혹은 이 정적을 깨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듯 밀가루를 짓이겼다. 하지만 손길이 거칠어질수록 반죽은 뭉치고, 할머니의 레시피가 말하던 '온기'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너무 세게 치대면 글루텐이 질겨집니다."
어느새 다가온 민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서윤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그는 어느새 평상에서 내려와 문가에 서 있었다.
"아... 죄_죄송해요. 제가 아직 서툴러서요."
"서툰 게 아니라, 성급한 겁니다. 빵은 사람을 기다려주는 일이에요. 반죽이 숨을 쉴 시간을 줘야 한다고요."
그의 조언은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마치 서윤의 조급함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 선 지적이었다.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늘 기다림보다 앞서나가는 것이 미덕이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야 했고, 속도가 곧 실력이었다. 이곳의 느릿한 호흡은 그녀에게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이질적인 규칙이었다.
민준은 서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다시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서윤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첫걸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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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서윤의 일상은 반복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오븐에서 나온 빵은 너무 딱딱하거나, 혹은 속이 제대로 익지 않아 떡처럼 뭉쳐 있었다. 할머니의 레시피 북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바닷바람의 온도'니 '파도의 리듬'이니 하는 문장들은 도무지 실체적인 수치로 다가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장을 보러 시장에 나가면, 눈길을 피하거나 낮은 속삭임이 뒤따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저 빵집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식의 소문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서윤은 자신이 이 마을의 풍경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이물질처럼 느껴졌다로.
해 질 녘, 서윤은 빵집 앞을 청소하다가 문득 소리를 들었다. 멀리 해안가 바위 근처에서 들려오는 낮은 소리였다. 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슬픈 선율을 품고 있었다.
살그머니 다가가 보니, 민준이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그 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힐 듯 말 듯 했지만, 그가 부는 멜로디는 서윤의 마음속 깊은 곳을 긁어내리는 듯한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슬픈 신음 같았다.
민준의 휘파람 소리는 마치 밤의 바다가 내뱉는 숨결처럼 낮고 길게 이어졌다. 서윤은 그 소리가 왜 이토록 가슴을 저미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부는 이 소리가 타인에게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서윤은 얼른 고개를 돌려 빵집 안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단순히 놀람 때문이 아니라, 그가 부는 휘파람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그날 밤, 서윤은 다시 레시피 북을 펼쳤다. 빈 페이지들이 여전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남긴 이 기록들이 단순한 요리법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간절한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다시 밀가루를 만졌다. 손끝에 닿는 차갑고 건조한 가루들이, 조금 전 보았던 민준의 차가운 눈빛과 겹쳐졌다. 서윤은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반죽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속도가 아니라, 이 공간이 품은 고요를 먼저 읽어내려 애쓰면서.
밤바다의 파도가 다시 한번 해안을 때렸다. 휘파람 소리는 멎었지만, 서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낮은 선율이 잔상처럼 남아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