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추격의 서막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강한은 젖은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네온의 잔상을 밟으며 숨 가쁘게 달렸다. 등 뒤로 느껴지는 신경 링크의 미세한 진동이 불길했다.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 과부하가 아니라, 거대한 포식자가 자신의 흔적을 쫓아오는 발소리처럼 느껴졌다. 아키텍의 시스템은 이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해체하려 드는 침입자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골목 어귀를 돌 때, 멀리서 기계적인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의 도시 소음과는 결이 다른, 날카롭고 위압적인 소리였다. 아키텍의 보안 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한은 골목 안쪽의 폐기물 더미 사이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방금 전 마주했던 그 붉은 데이터의 환영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인간을 도축하여 시스템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그 끔찍한 진실이, 발밑의 그림자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움직이지 마라. 시스템 최적화 프로세스가 구역을 스캔 중이다."
머릿속을 울리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신경 링크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보안 팀의 드론이 공중을 가르며 붉은 탐지광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강한은 숨을 참았다. 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만, 소리를 내는 순간 자신의 위치가 데이터로 치환되어 저들에게 전달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이쪽이야, 눈 가리고 달리는 영웅님!"
머리 위쪽, 낡은 배관 사이에서 가늘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시야 한구석에 작은 홀로그램 신호가 깜빡였다. 강한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누군가 그의 어깨를 낚아채 어두운 환풍구 안으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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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크게 쉬어. 죽을 것처럼 참으면 데이터 노이즈만 더 심해지니까."
좁고 습한 환풍구 안, 강한은 자신을 끌어당긴 인물과 마주했다. 짧은 단발머리에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방금 전의 긴박한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데이터 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유나였다. 하층 구역에서 전설처럼 떠도는 천재 해커.
"유나...?"
"반가워할 시간 없어. 지금 네 신경 링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시스템에 아주 예쁘게 찍히고 있거든."
그녀는 강한의 팔목에 채워진 신경 링크의 출력값을 조작하며 낄낄거렸다. 그녀의 손놀림은 정교하면서도 대담했다. 강한은 그녀가 자신의 신호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밖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압박감이 아주 미세하게 잦아들었다.
"아키텍이 움직이고 있어. 네가 방금 건드린 게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는 걸 그들도 눈치챈 모양이야."
유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낙천적인 분위기 이면에 숨겨진 날카로운 통찰력이 서려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게 뭔지 알아? 기억을 먹어치우는 저 거대한 위장 말이야. 너도 이제 그 식탁의 주인공이 될 판이라고."
강한은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유나는 품속에서 작고 은색으로 빛나는 장치를 꺼냈다. 신경 링크의 보조 장치였다.
"자, 이거 써. 신경계의 과부하를 억제해주고, 아키텍의 추적 알고리즘을 잠시 교란해줄 거야. 네 링크가 너무 비명을 지르지 않게 달래주는 진정제 같은 거지."
그녀가 건넨 장치는 차갑고 매끄러웠다. 강한은 잠시 망설였다. 이 세계에서 누군가 대가 없이 내미는 손길은 대개 독이 든 성배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유나가 건넨 장치를 자신의 신경 링크 단자에 연결했다.
순간, 머릿속을 짓누르던 날카로운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지며 기분 좋은 평온함이 찾아왔다. 마치 거친 파도가 잦아들고 고요한 수면이 찾아온 듯한 감각이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네. 역시 난 천재라니까."
유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앞장섰다. 강한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자신의 팔목에 부착된 은색 장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온함이 찾아왔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위기감이 남아 있었다.
그는 방금 전 보았던 데이터의 진실을 떠올렸다. 인간을 도축하여 에너지를 얻는 시스템. 그렇다면 이 장치가 정말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신경 신호를 더욱 정교하게 가공하여 시스템에 보고하기 위한 정교한 위치 추적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이 장치가 유나의 의도와는 다른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라면, 자신은 지금 스스로를 감시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저 멀리서 다시 한번 보안 드론의 붉은 빛이 벽면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강한은 유나의 뒤를 쫓아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네온의 빛이 등 뒤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