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네오 서울의 밤은 결코 어둡지 않다. 인공 구름이 태양을 집어삼킨 하늘 아래, 도시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네온사인들이 비릿한 빛을 쏟아내며 지상의 욕망을 부추긴다. 공기 중에는 타버린 전선 냄새와 정체 모를 데이터의 잔향이 뒤섞여 흐른다. 사람들은 뇌 속에 박힌 신경 링크를 통해 가상의 낙원으로 도피하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축축한 콘크리트의 감각뿐이다.
강한은 눈을 감았다. 망막 위로 흐르는 디지털 노이즈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는 지금 타인의 기억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 혹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죄책감의 조각들을 데이터의 칼날로 도려내어 무(無)의 심연 속으로 던져 넣는 일. 그것이 그의 업이었다.
"이것만 지우면, 당신은 정말로 자유로워질 겁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스스로를 향한 저주처럼 들렸다. 기억을 지울수록 그의 내면은 오히려 텅 빈 구멍처럼 커져만 갔다. 사라진 동생의 얼굴이 안개 속을 헤매듯 흐릿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이 지우고 있는 것이 타인의 기억인지, 아니면 자신의 실체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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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데이터는 때로 유령처럼 떠돈다.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 아키텍의 거대한 서버가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신경 링크를 타고 뇌를 자극했다. 강한은 문득 등 뒤로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시스템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섬뜩한 자각에 가까웠다.
"너는 정말로 네가 기억하는 대로 존재하고 있나?"
그는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네온의 빛이 번뜩이며, 도시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발밑을 잠식해 올 뿐이었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된 이 세계에서, 진실은 오직 삭제된 기억의 잔해 속에만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막, 그 잔해 속에서 금지된 문장을 발견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