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안개 속의 달콤한 향기

기억을 굽는 오븐과 그림자 조각 · 약 5분

밤새 내려앉은 안개는 마치 마을의 숨결을 억지로 짓눌러 가둔 듯 끈적하고도 무거웠다. 빵집의 문이 닫히자마자, 외부의 차가운 공기는 단절되었고 실내에는 빵이 익어가는 온기만이 가득 찼다. 루나는 바르도의 곁에 서서, 그가 반죽을 치대는 리드미컬한 동작을 지켜보았다. 퍽, 퍽, 소리가 날 때마다 반죽은 더욱 찰기 있게 달라붙었지만, 그 속에 섞인 기억의 파편들은 비명도 없이 짓눌려갔다.

"할아버지, 이 반죽은 왜 이렇게 차가운가요?"

루나가 손끝에 닿는 반죽의 질감을 설명하며 물었다. 바르도는 잠시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깊은 웅덩이처럼 고요했다.

"차갑게 느껴지는 건 기억이 품고 있는 슬픔의 온도란다. 사람들은 아픔을 잊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지만, 그 아픔은 사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조각들이기도 하지. 우리는 그 무게를 덜어내는 일을 돕는 것이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란다."

그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루나의 마음에는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루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잊는 것'이 곧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반죽이 매끄럽게 펴질 때마다, 창밖의 세상이 조금씩 더 흐릿해지는 것을. 빵집 벽면에 비친 그림자가 마치 수채화 물감이 빠져나간 종이처럼 창백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빵집의 화덕이 거세게 웅웅거렸다. 빵이 구워지기 시작하자, 빵집 안은 순식간에 달콤하고도 씁쓸한 향기로 가득 찼다. 그것은 잘 익은 사과의 향기 같기도 했고, 오래된 책장 사이에서 발견한 마른 꽃잎의 냄새 같기도 했다. 루나는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향기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마을 어디선가 들려와야 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환청처럼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딘가... 비어버린 것 같아요."

루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엇이 비어있다는 말이냐?"

바르도가 다시 반죽을 만지기 시작하며 물었다. 루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니요, 소리가요. 예전에는 이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제는 안개가 소리를 잡아먹는 것 같아요. 아니면... 사람들이 소리를 잃어버린 걸까요?"

바르도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화덕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머물렀다. 그 순간, 빵집 내부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는 듯했다.

"사람들은 가벼워지기 위해 소중한 것을 내어놓는단다. 그 대가는 때로 너무나도 고요한 풍경이지."

바르도의 목소리에는 깊은 탄식이 배어 있었다. 루나는 그가 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에 스친 찰나의 슬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잃어버린 자의 슬픔이었고, 무언가를 지켜내지 못한 자의 고독이었다.

✦ ✦ ✦

작업이 끝난 후, 루나는 빵집 창가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안개는 여전히 마을의 하단부를 집어삼키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치 유령처럼 희미한 형체를 유지하며 이동했다. 마을의 색채는 점차 파스텔 톤으로 바래가고 있었다. 붉은 지붕도, 노란 꽃도, 활기찬 초록빛도 이제는 채도가 낮은 회색빛이 섞인 듯이 보였다.

루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빵을 굽는 일을 도우며 얻은 밀가루 가루가 손가락 끝에 하얗게 묻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마을 사람들의 기억이 묻어난 흔적 같았다. 루나는 문득 마을 어딘가에서 울려야 할, 그러나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를 상상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차 있는지, 그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불안감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녀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곳에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아니라,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작은 파수꾼의 얼굴이 있었다. 빵집의 깊은 곳, 화덕 너머에서 무엇이 자라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마을의 색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안개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휘감기 시작했다.

루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르도를 향해 돌아섰다.

"할아버지, 내일은 조금 더 밝은 색깔의 기억을 구워볼 수 있을까요? 아주 작은, 아주 작은 기쁨의 조각이라도요."

바르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점점 차가워져 가는 빵집의 온기를 지키려는 듯 가마솥의 불을 다시 지폈다. 창밖의 안개는 이제 마을의 중심부까지 침투해, 사람들의 발끝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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