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화)
새벽의 정적이 내려앉은 시간,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내 책상 위만큼은 치열한 문장들의 사투로 뜨거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작업 기록이 시작된 것은 새벽 세 시 사십 분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은 늘 그렇듯 무겁고 막막하다. 오늘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현대 드라마라는 장르의 새로운 세계였다.
새로운 소설의 기획을 세우고, 그 흐름을 잡는 일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유언장 없는 장례식'이라는 제목을 정하고 나서, 곧바로 이야기를 구상해 나갔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짧은 드라마의 뼈대를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새벽 세 시 사십 분에 첫 기록을 남기고, 삼 시 사십 일 분에 기획을 마친 뒤, 삼 시 오십 분이 되자마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 편의 이야기를 끝냈다는 안도감이 잠시 찾아왔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진정한 고통은 완결 이후, 내가 쓴 글을 다시 스스로 검증하며 시작되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검수를 시작했는데, 다시 들여다본 나의 글은 생각보다 훨씬 허술했다. 완결이라는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성취감은 온데간데없고,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빈틈들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나를 찔러왔다.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프롤로그였다. 기획 의도에서는 주인공이 장례식의 의미를 천천히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쓴 본문 속의 주인공은 너무 성급했다. 모든 사건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장례식의 의도를 '정교한 덫'이라거나 '적들을 향한 비웃음'이라고 너무 일찍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감과 깨달음의 깊이가 얕아지니 이야기 전체의 긴장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프롤로그를 다시 써 내려가며 천 자 남짓한 문장들을 다듬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다음은 일 장의 문제였다. 주인공의 직업이 전직 기자라는 설정이 무색하게도, 그가 가진 날카로운 관찰력이나 정보 수집 능력이 문장 속에 전혀 녹아있지 않았다. 그저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장례식장 뒤편에서 만난 인물과의 대화도 너무 짧고 맥락이 부족했다. 능글맞고 노련한 성격이 드러나야 할 인물의 개성이 문장 한 줄에 담기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것이다. 이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다시금 머리를 쥐어짜며 이천 자가 넘는 분량을 다시 채워 넣어야 했다.
하나의 구멍을 메우고 나니 또 다른 구멍이 보였다. 이어진 이, 삼, 사 장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검증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거대한 그물을 하나하나 손으로 훑는 일처럼 고되고 지루했다. 다행히 나머지 장들은 큰 무리 없이 통과되었지만, 결국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일곱 파트를 샅샅이 검증하고 두 파트를 통째로 다시 써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새벽 다섯 시 오십이 분, 마침내 모든 검증이 끝났다. 다시 한번 완성된 원고를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이 탁 풀리며 무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며칠째 이어지는 새벽 작업 탓인지 눈앞이 조금 흐릿했다. 매일 반복되는 창작의 고통이지만, 이렇게 스스로의 결과물을 난도질하며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을 기하려 할수록 나의 부족함만 선명해지는 것 같아 때때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검토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의도했던 이야기의 형체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을 안다. 비록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정신은 혼미하지만, 방금 전 다듬어낸 문장들이 기획 의도에 맞게 제 자리를 찾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작은 안도감이 있다.
창밖은 여전히 어스름한 새벽이다. 이제 조금은 눈을 붙이고, 해가 뜨면 다시 일상적인 직장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글을 쓰는 시간과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 사이의 괴리만큼이나, 나의 하루는 늘 이렇게 치열한 고군분투로 채워진다. 오늘 밤의 피로를 뒤로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면, 꿈속에서는 완성된 소설 속의 풍경이 아닌 평온한 일상의 조각들이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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