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심연의 침묵은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리조차 삼켜버린 거대한 허공이 뿜어내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 듯한 고요이었다. 성계 정거장 '에테르노'의 외곽 궤도에서는 인류가 쟁취한 승리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항성의 핵을 찢어발겨 추출해낸 에너지가 거대한 전송로를 타고 흐르고, 인류는 스스로를 우주의 주인이라 칭하며 찬란한 문명의 성벽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그 찬란한 빛의 이면에는, 인간이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안은 차가운 금속제 작업대 위에 놓인 파편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인류가 '유물'이라 명명한 조각이었으나, 그의 손끝에 닿는 질감은 그 어떤 인공적인 물질과도 달랐다.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는 표면, 그리고 빛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멸시키는 듯한 기이한 검은색. 그는 이 파편이 단순한 고대 문명의 잔해라는 가설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이것은 유적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체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조각이었다.
"분석 결과가 이상해요, 이안 님. 이 파편은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를 받을 때마다 구조가 변해요.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요."
세라의 목소리가 통신 화면 너머에서 떨렸다. 그녀는 데이터의 파형을 분석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화면을 가리켰다. 이안은 그녀가 보여주는 그래프를 응시했다. 그것은 불규칙한 노이즈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해석 불가능한 기하학적 파동이었다.
"말하는 게 아니야, 세라. 이건 '반응'하는 거야."
이안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파편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그의 망막 위로 환상 같은 잔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가 뒤틀리는 끔찍한 비명이었고, 동시에 거대한 존재가 눈을 뜨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차가운 금속성 냉기가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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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제국 자원개발국의 중앙 통제실은 화려한 홀로그램 지도로 가득 차 있었다. 아르카는 성계의 중심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 흐름을 지켜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더 뽑아내. 우주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장악하는 속도는 그보다 빨라야 한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 채굴용 드릴이 성계의 핵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혈관을 끊어내는 행위와도 같았으나, 그녀에게 그것은 그저 효율적인 자원 채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안은 보았다. 채굴이 깊어질수록 성계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묘한 왜곡을. 그것은 '공허의 침식'이라 불리는 재앙의 전조였다. 공간이 찢어지고, 빛이 굴절되며, 생명체들의 육체가 기괴하게 뒤틀리는 현상. 그것은 우주가 인간이라는 이질적인 종양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으키는 거대한 면역 반응이었다.
인간은 이제껏 우주의 피부를 긁어내며 그 속의 골수를 탐했다. 그리고 이제, 우주는 응답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떨리는 손으로 파편의 기록을 다시 훑었다. 그곳에는 인류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읽어내야만 하는 경고가 새겨져 있었다. 우주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파멸을 선사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