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강남의 밤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되어 있었으나, 그 빛이 닿지 않는 빌딩의 틈새는 지독하게도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도윤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을 무표정하게 응시하며 서류 뭉치를 내려놓았다. 시계 초침이 가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는 사무실 안에서, 그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수트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그가 구축해온 철벽 같은 성벽을 증명하고 있었다. '얼음 조각'이라 불리는 그의 별명은 단순히 차가운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온기조차 허용하지 않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세워 올린 방어기제에 가까웠다.
"이 부분, 논리적 비약이 심하군요. 기초적인 데이터 분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보고서를 가져오신 건가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책상 맞은편에 선 이연우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도윤의 시선은 마치 예리한 메스처럼 그녀의 자존심을 파고들었다. 연우는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손을 책상 아래로 숨겼다. 오늘 하루도 버텨내야 하는 하루였다. 사직서가 들어있는 가방은 무겁게 발치에 놓여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억울함과 피로가 뒤섞인 불꽃이 일렁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연우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단했다. 그녀는 도윤의 차가운 지적 속에서 그가 숨기고 있는 지독한 고립의 냄새를 맡았다. 그는 완벽이라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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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쏟아지는 빗줄기는 도시의 소음을 지워버렸다. 연우는 젖은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생각했다. 저 차가운 남자의 성벽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도윤은 차가운 얼음처럼 단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밀어냈지만, 그가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언제나 홀로 남겨진 자의 쓸쓸함을 머금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그들의 일상 속에 균열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유리벽 너머로 흐르는 긴장감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서늘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