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심해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것은 침묵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질량의 압박에 가까웠다. 수천 미터 아래, 태양의 온기조차 닿지 않는 암흑의 영역에서 아르고스호는 차가운 금속의 외피를 드러낸 채 느릿하게 하강했다. 외부 장갑을 때리는 수압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뼈를 으스러뜨리려는 듯 집요했고, 선체 곳곳에서는 비명 같은 금속성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수심 4,000미터 돌파. 외부 수압 상승으로 인한 미세 균열 감지됩니다."
조종석의 모니터에 뜬 경고 문구는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강이준은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인간이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존재했다. 지각 변동으로 수몰된 지구는 이제 인류의 무덤이자 거대한 수족관이 되었고, 그 깊은 밑바닥에는 잊힌 문명의 잔해가 잠들어 있었다.
"팀장님, 외부 센서에 이상 반응이 잡힙니다. 단순한 해류의 흐름이 아니에요."
한서윤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전달되었다. 그녀의 눈은 데이터 시트 위에 뜬 기묘한 파형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은 규칙적이었으나 생명체의 맥박과는 달랐다. 마치 지구가 깊은 숨을 몰아쉬는 듯한, 혹은 아주 오래전 죽어간 무언가가 이제야 비명을 지르는 듯한 파동이었다.
"이클립스 반응인가?"
이준이 묻자, 서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이건 에너지 반응이 아니라... 신호에 가까워요. 마치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아르고스호 전체가 거대한 수압에 밀려 휘청였다. 그것은 단순한 조류의 이동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선체를 스치고 지나간 듯한 묵직한 진동이 선체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었다.
✦ ✦ ✦
"데이터 확인해. 저건 지질 활동이 아니야. 인공적인 신호야."
박태준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는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데이터의 가치를 계산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에게 이 심해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채굴해야 할 자원의 보고였다.
"상관없어.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신호의 근원이야. 그게 무엇이든, 일단 끄집어내."
이준은 대답 대신 조종간을 꽉 쥐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바다는 인간의 탐욕에 반응하며 그 형태를 비틀어온다는 사실을. 깊어질수록 왜곡되는 물리 법칙과, 인간의 언어를 닮아 있으면서도 기괴하게 뒤틀린 고대 유적의 기록들. 그것들은 경고였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경고를 무시하며 파멸로 걸어 들어갔다.
아르고스호의 전방 조명등이 비추는 곳에, 처음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대한 구조물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뼈처럼, 혹은 신의 무덤처럼 차가운 긴장감을 품은 채 심해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