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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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주파수 · 약 3분

침묵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미가 거세된 상태를 뜻한다. 국가 보안 연구소, 일명 ‘침묵의 방’은 그 정의를 가장 극단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정제된 산소와 차가운 금속성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벽면에 박힌 무채색의 패널들은 모든 개인의 흔적을 지워낸 채 오직 데이터의 흐름만을 수용했다. 이곳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불필요한 노이즈로 분류되어 차단되었다. 모든 의사소통은 암호화된 텍스트를 통해서만 허용되었으며, 그 문장들은 국가의 보안망 아래 철저히 해체되고 재조립되었다.

이서진은 모니터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가 만들어내는 고독한 리듬을 응시했다. 그녀에게 언어란 감정의 잔해를 닦아낸 순수한 구조체였다. 문장은 체계화된 논리의 성벽이었고, 단어는 그 성벽을 구성하는 벽돌이었다. 그녀는 감정이라는 불확정 요소가 개입될 때 발생하는 언어의 왜곡을 혐오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 폐쇄적인 연구 환경은 오히려 완벽한 실험실이었다. 인간의 온기가 배제된 공간이야말로 언어의 본질을 가장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화면 위로 첫 번째 메시지가 떠올랐다. [언어의 유기적 구조와 인공지능의 논리적 추론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기초 데이터 전송을 확인했습니다.]

서진은 마우스 휠을 돌려 상대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강하준. 인공지능 개발자. 그가 보낸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마치 잘 설계된 알고리즘처럼 정교했다. 그녀는 그 문장의 배후에 숨은 인간의 의도를 분석하려 애썼으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논리의 벽뿐이었다.

그녀는 답장을 입력했다. [데이터의 정합성은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는 선형적 구조에 머물지 않습니다. 문맥 속에 숨겨진 비정형적 데이터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녀의 문장은 날카로웠다. 상대의 논리를 파고드는 듯한 예리함이 묻어났다. 잠시 후, 화면이 깜빡이며 답신이 돌아왔다.

[비정형적 데이터는 결국 확률의 영역입니다. 감정이라는 변수를 배제하고, 가장 효율적인 매개변수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서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효율이라니. 그의 문장은 지나치게 건조했지만, 동시에 그 어떤 문장보다도 명료하게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기묘한 대칭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이 문장들이 실재하는 인간의 의지인지 혹은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의 반응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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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작동음이 정적을 깼다. 연구소의 조명은 일정하게 유지되었지만, 서진은 가끔씩 자신이 이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모든 대화는 기록되고, 분석되며, 가공된다. 이곳에서 사적인 감정은 오류이자 불순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느꼈다. 화면 너머의 누군가가 던진 차가운 문장들 사이에서, 아주 미세한 균열을 발견했다는 것을. 그것은 분석할 수 없는, 데이터로 치환되지 않는 찰나의 지적 긴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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