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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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잔상 · 약 3분

지상의 태양은 이 지하 벙커의 깊숙한 수직 구조 아래에서는 한 번도 닿지 않는 신화 속의 유물이었다. 아르고스의 심장부라 불리는 지하 벙커는 차가운 금속의 질감과 무기질적인 백색 조명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이곳의 공기는 지나치게 정제되어 오히려 폐부를 찌르는 듯한 건조함을 품고 있었다. 모든 소음은 흡수되고, 모든 시선은 감시되는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인간의 감정은 불필요한 노이즈로 취급되었다. 서이현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단말기를 확인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눈동자는 표정 없는 유리알처럼 매끄럽게 빛났고, 그 시선은 벽면을 가득 채운 데이터 흐름을 예리하게 훑어내렸다. 이곳은 정보가 곧 생존이며, 침묵이 곧 권력인 성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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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분석관 서이현, 배치 확인되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울림조차 허용되지 않는 방음 시설 속에서 그녀의 음성은 벽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줄기처럼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이현은 자신이 분석해야 할 첫 번째 데이터 덩어리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방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 스크린보다 더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것은 물리적인 압박이라기보다, 공기의 밀도를 단번에 바꾸어버리는 지배적인 위압감이었다.

"반갑습니다, 서이현 분석관. 이곳의 공기는 밖보다 훨씬 차갑지만, 그만큼 명료한 진실을 보여주죠."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는 여유로운 조소와 날카로운 지성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이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했다. 강도준이었다. 그는 완벽하게 재단된 수트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품평하는 포식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으며, 이현의 긴장감을 즐기는 듯한 오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강도준 팀장님."

이현이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이 벙커의 모든 정보는 암호화되어 있었고, 그 암호를 푸는 열쇠는 오직 허가된 자만이 쥘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의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숨통을 죄어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럼 시작해 보죠. 당신이 가져온 데이터 속에 숨겨진 진실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아니면 그저 가공된 거짓에 불과한지 확인해봐야 하니까."

도준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그 끝은 서늘한 칼날 같았다. 이현은 입가에 미세한 긴장조차 보이지 않는 표정을 유지하며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이제 막 시작된 이 기묘한 고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무기를 쥐고 서로를 향해 첫 번째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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