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유머러스한 능력

시간의 농담 · 약 9분

지하 통로의 어둠 속에서 하나는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오래된 돌 벽을 따라 걸어갔다. 박준서는 그녀 옆에서 조심스럽게 발자국 소리를 최소화하며 따랐다. 통로는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 있었지만, 하나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노트북 화면에 적힌 고대 기호를 떠올리며 긴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여기서 멈췄네요, 박준서 선생님."

하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며 벽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을 관찰했다. 그 기호들은 시간과 공간을 상징하는 듯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박준서는 그녀 옆에서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정말 흥미롭네요, 하나 씨. 이 기호들이 김현우 선생님이 말한 유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빛이 비치는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낡은 돌로 만든 문이 있었고, 문 위에는 더욱 정교한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문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며, 그 안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그들을 환영했다.

문 너머로 드러난 공간은 학원의 지상층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공기는 밀도가 높았고,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끈적한 저항감이 피부에 닿았다. 하지만 그곳에 놓인 석조 제단과 벽면에 새겨진 수식들은 하나가 그동안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하고 날카로운 기하학적 질서를 뿜어내고 있었다.

"와, 이건 진짜 예술인데?"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긴장으로 팽팽하게 조여졌던 근육이 순간적으로 이완되며 유머러스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이 기묘한 풍경을 담으려 했다.

"이런 곳이 학원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니, 우리 원장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어요. 이 정도면 거의 판타지 소설 속 던전 아닌가요?"

준서는 그녀의 농담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학원 내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지닌 조교답게, 긴박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렇네요. 하지만 하나 씨, 조심하세요. 여기는 단순히 '멋진' 장소가 아니에요. 김현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구조적 질서'가 물리적으로 구현된 곳이니까요."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벽면에 새겨진 수식들을 훑으며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벽에 새겨진 복잡한 연립방정식의 한 줄을 눈으로 훑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마치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기묘한 감각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라, 방금 보셨어요? 제가 방금 그 수식의 흐름을 읽었을 때, 저쪽 끝에 있는 촛불이 아주 잠깐 멈춘 것 같은데."

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지만, 그 말은 농담이라기엔 너무나 정확한 관찰이었다. 실제로 벽면 끝에 놓인 촛불은 마치 시간이 박제된 것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그럴 리가요. 하나 씨가 그냥 눈으로 본 것뿐일 거예요."

준서가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그의 손등에는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하나가 의도치 않게 현실의 틈새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틈이 벌어질 때마다 발생하는 파동이 이 지하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때였다. 지하의 고요을 깨고 학원의 다른 학생들과 조교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진 듯한 소란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확인하며 서둘러 이동했다.

✦ ✦ ✦

학원 휴게실은 평소보다 훨씬 활기차고, 동시에 기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여 앉아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하나가 들고 있던 노트와, 그녀가 방금 전까지 연습했던 수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진짜로 시간이 멈춘 거야? 방금 네가 그 문제를 풀었을 때, 시계 바늘이 멈춘 걸 봤어!"

한 여학생이 흥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주변의 학생들은 환호하거나 혹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하나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수학 문제를 푸는데 시간이 멈춰? 그거 완전 초능력 아니야?"

"그러니까요. 하나 씨, 이거 정말 대단한데요? 우리 학원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학생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하나는 예상치 못한 주목에 당황하면서도,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너무 열심히 풀어서 시간도 깜짝 놀라 멈춘 거 아닐까요? 제가 공부를 너무 잘해서 세상이 질투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녀의 재치 있는 농담에 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 사이로 하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준서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준서는 하나가 보여주는 이 '능력'이 단순한 유희나 우연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이 현상이 학원의 깊은 곳에 잠든 것들을 깨우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맞아요. 하나 씨의 집중력은 정말 대단하죠. 하지만 이런 현상은 아주 정교한 계산과 통제가 필요한 영역이라, 함부로 다루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준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는 학생들의 관심을 적절히 분산시키면서도, 하나의 능력을 '위험한 힘'이 아닌 '특별한 재능'으로 포장하며 보호하려 애썼다.

"준서 선생님 말씀대로예요. 이건 일종의... 공명 같은 거라, 아직은 우리가 이 힘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니까요."

하나는 준서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준서의 저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지키려는 절박한 의지를.

학생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냈고, 하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듯 몇 가지 복잡한 수식들을 더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공기는 미세하게 일렁였고, 학생들은 그것을 '신기한 시각 효과'나 '집중력의 산물'로 치부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움과는 달리, 학원의 벽면 곳곳에 새겨진 고대의 기호들은 하나가 수식을 풀어낼 때마다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준서는 그 진동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이 학원이 지켜온 비밀이, 그리고 하나가 자극하고 있는 이 '시간의 틈'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지 두려워했다. 그는 학원의 적대자들, 즉 이 힘을 탐욕스럽게 이용하려는 자들의 그림자가 어디선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자, 이제 그만하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죠. 이런 특별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건 수학적 진실이니까요."

준서가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학생들은 환호하며 흩어졌고, 휴게실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하나는 책상 위에 놓인 나침반을 바라보았다. 바늘은 이제 이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특정 방향을 향해 요동치고 있었다.

"준서 선생님, 방금 학생들 앞에서는 잘 웃었지만... 사실 조금 무서워요. 제 손끝에서 시작되는 이 일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거든요."

하나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준서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나침반을 함께 바라보았다.

"무서워하는 게 당연해요, 하나 씨. 하지만 우리가 이 힘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만 있다면, 이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지도가 될 수도 있어요. 다만,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지도 생각해야겠죠."

준서의 말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우려과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는 대신,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그 방향을 함께 응시했다.

그 순간, 학원의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진동이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주 오래전 잊혔던 구조적 질서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나는 나침반의 바늘이 한곳에 고정되지 못하고 미친 듯이 회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시간의 틈이 더 이상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준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직감했다. 학원의 비밀을 노리는 그림자가 드디어 이 '틈'을 발견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그림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포가 그의 마음을 스쳤다.

"준비해야 해요, 하나 씨. 이제부터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될 거예요."

준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부드러운 조교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료를 지키려는, 그리고 학원의 질서를 수호하려는 한 인간의 절박한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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