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제1장: 찻잔 속에 담긴 다른 세계

조선에서 온 팝업스토어 · 약 6분

눈을 뜨자마자 느껴진 것은 지독한 이질감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서울의 매연 섞인 공기와는 달랐다. 그것은 젖은 흙의 비린내와 이름 모를 산야의 풀 향기가 뒤섞인, 지극히 원초적이고도 서늘한 향이었다.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은 것은 매끄러운 아스팔트가 아니라, 거칠고 울퉁불퉁한 흙바닥이었다.

"꿈인가?"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낮은 목소리뿐이었다. 서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 대신, 겹겹이 둘러싸인 푸른 산줄기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구름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현대의 인공적인 조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순수했다.

그녀는 자신의 차림새를 살폈다. 카페를 정리하고 나오던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검은색 슬랙스에 옅은 베이지색 셔츠, 그리고 어깨에 걸친 가디건까지. 하지만 이 평범한 현대의 옷차림은 이 고요한 자연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서연은 다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스마트폰이 손에 잡혔다. 화면을 켰으나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면 익숙한 풍경이었다. 다만, 위치를 알려줄 GPS 신호조차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때, 서연의 시선이 발치에 떨어진 물건에 머물렀다. 아까 골동품점에서 만졌던 바로 그 찻잔이었다. 흙바닥 위에서 기이한 빛을 머금은 채 놓여 있는 찻잔은, 마치 그녀를 이곳으로 안내한 유일한 증거처럼 보였다. 서연은 홀린 듯 다가가 찻잔을 집어 들었다.

"이게 어떻게..."

찻잔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 아주 미세하게 깔린 하얀 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눈 가루처럼 아주 작고 고운 입자들이 찻잔 안쪽 벽을 따라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서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문질러 보았다. 손끝에 닿은 가루는 설탕처럼 달콤한 향을 풍기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미세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현실의 조각이 부서져 내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때였다. 멀리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숲을 헤치고 내려가자, 낮은 돌담이 이어진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섞여 있는 풍경,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복장. 모두가 낯선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서연은 숨을 죽인 채 마을 어귀로 다가갔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오늘 장날이라 그런지 사람 구경하기가 참 힘드네."

"저기, 저 길 끝에 있는 주막에 들렀다 가세나."

그들의 말투는 지금의 한국어와 비슷했지만, 미묘하게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서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려 애썼다. 타임슬립.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1750년의 조선. 그녀의 머릿속에 박힌 역사적 지식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영조 시대의 끝자락, 격동의 시기.

갑자기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긴장과 혼란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것은 지독한 허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마을 입구에 위치한 작은 주막 앞에 서 있었다. 주막 안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구수한 국물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서연은 침을 삼켰다. 당장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이 낯선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먹는 문제가 시급했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카페에서 쓰던 앞치마를 꺼내 어깨에 둘렀다. 그리고 결심했다. 가진 것은 이 찻잔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수천 가지의 레시피뿐이라고.

"저기요, 실례합니다."

서연이 조심스럽게 주막 안으로 들어서자, 일을 하던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어머, 웬 옷차림이랴? 처음 보는 옷이구먼."

여인은 서연의 현대적인 옷차림을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 서연은 최대한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 혹시 음식을 좀 팔아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아주 맛있는 것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여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맛있는 거라니? 이 근처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내가 이미 다 먹어봤을 게야. 자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궁금하구먼!"

서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막의 주방에는 나무로 된 도구들과 투박한 그릇들이 가득했다. 설탕도, 생크림도, 오븐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손끝의 감각과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있었다. 서연은 주막 한편에 놓인 꿀단지와 곡식들을 유심히 살폈다.

'할 수 있어. 이 재료들로 사람들의 입맛을 깨워야 해.'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방금 전 찻잔 속에서 보았던 그 하얀 가루를 떠올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연은 주방의 화덕에 불을 지피며, 조선의 식재료로 만들어낼 첫 번째 디저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 ✦ ✦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어가는 오후, 주막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는 서연이 내놓은 작은 접시 하나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서연은 주막에서 구한 쌀가루와 꿀, 그리고 제철을 맞은 과일을 활용해 현대식 '쌀 푸딩'과 유사한 형태의 간식을 만들어냈다. 불을 이용해 정성스럽게 저어 만든 반죽은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했고, 그 위에 꿀을 얇게 입혀 반짝이는 빛깔을 더했다. 여기에 아주 미세하게 으깬 견과류를 고명으로 올려 시각적인 완성도까지 높였다.

"이게 대체 무엇인고?"

처음 맛을 본 주막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자, 그녀는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냥 간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너무 신기하게 맛이 나요!"

여인의 외침은 곧 주막을 찾은 손님들의 이목을 끌었다. 서연은 떨리는 손을 맞잡으며, 자신이 만든 작은 음식이 이 낯선 세계의 흐름을 바꿀 신호탄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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