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낯선 손님의 방문
다음 날 아침, 세탁소의 공기는 어제보다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창밖의 안개는 밤사이 걷히지 못한 채 골목의 낮은 지붕들을 꾸역꾸역 짓누르고 있었다. 준우는 평소처럼 스팀 다리미의 온도를 맞추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손끝에 닿는 감각은 여전히 어제의 그 서늘한 여운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두고 간 코트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눈을 감아도 그 검푸른 얼룩의 형상이 망막 위에 잔상처럼 남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옷감 속에서 꿈틀거리며 준우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세탁을 시작하기 전, 늘 하던 대로 코트의 안감을 꼼꼼히 살피며 결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코트의 안쪽, 겨드랑이 아래쪽의 여린 안감 부분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질감을 느꼈다.
손가락 끝이 머문 곳은 매끄러운 실크의 질감이 아니었다. 아주 작고 정교하게, 그러나 무언가 억눌린 듯한 모양으로 수놓아진 자수가 있었다. 꽃인지, 혹은 기하학적인 문양인지 알 수 없는 그 작은 무늬는 실의 색이 바래어 형체조차 희미했지만, 그 형상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수를 손톱 끝으로 가만히 문질렀다. 순간, 심장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그는 서둘러 작업대 구석, 깊숙이 숨겨둔 낡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아내가 떠나던 날,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온 빛바랜 쪽지 한 장이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 쪽지를 꺼내 코트의 자수 문양 옆에 나란히 두었다. 쪽지에는 아내의 필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기억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그 문장과 코트의 기이한 자수. 두 가지가 한 시야에 들어오자, 준의 머릿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 일었다. 아내가 남긴 말은 평온을 말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남긴 유품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쪽지를 다시 상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스스로를 다스려야 했다. 이것은 그저 손님이 맡긴 옷일 뿐이다. 감정을 읽어내는 자신의 능력이 만들어낸 환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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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하고 정적을 깨는 종소리가 울렸다. 어제 그 여자였다.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선명한 안색이었으나, 눈동자 깊은 곳에 자리한 그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은 여전했다. 여자는 준우가 코트를 만지던 손길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그 안에 담긴 것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해서요.”
여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이면에는 날 선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준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를 마주 보았다.
“세탁을 시작하면, 옷감 속에 숨어있던 것들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얼룩이 지워지면서 나타나는 흔적들 말입니다.”
“그 흔적들이 제가 찾던 답일까요?”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이 작업대 위에 놓인 코트에 머물렀다. 준우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애써 무심한 척 대답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옷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여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시선이 준우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 다시 코트로 향했다. 마치 그 코트가 자신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옷을 응시했다.
“이 코트의 주인은... 아주 소중히 여겼던 것 같아요.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말이죠.”
여자의 말에 준우는 가슴이 조여오는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옷에 대한 애착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전부였을지도 모를, 혹은 도저히 놓아줄 수 없었던 기억의 무게였다.
“세탁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얼룩이 워낙 깊어서요.”
준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얼룩은 옷감에 밴 오염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속에 뿌리 깊게 박힌 상처를 의미하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목례를 남긴 뒤 세탁소를 나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차가운 가을바람만이 맴돌았다.
준우는 다시 혼자가 된 세탁소에서 홀로 코트를 마주했다. 방금 본 그 작은 자수 문양이 계속해서 눈앞을 어른거렸다. 그것은 마치 아내가 남긴 쪽지의 문장처럼,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너는 정말로 다 알고 있는가?'라고.
그는 결국 결심한 듯, 코트를 세탁용 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검푸른 얼룩들이 물결을 타고 일렁이며 무서운 기세로 번져 나갔다. 마치 억눌려 있던 슬픔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준우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이 지금 무엇을 마주하려 하는지 다시금 자문해야 했다.